Posts

Showing posts from March, 2024

부활 대축일 강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드리고 함께 기뻐합니다 . 주님 부활의 은총이 교우들에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 주님 부활의 은총이 교우분들 삶 안에 깊숙이 내려오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그래서 교우분들의 삶에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강론을 준비하면서 부활 대축일에 어떤 인사말이 모두가 만족하고 기뻐할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 보통으로 ‘ 부활 축하드립니다 ’ 라는 말로 인사하는데 좋은 말을 없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   부활 대축일 아침 복음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 무덤을 찾아갔던 마리아 막달레나 여인에게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돌무덤에 안치한 후 , 그 다음날에 무덤을 찾았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습니다 . 어머니 마리아도 아니고 열 한 제자도 아닌 그저 무명의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 예수님의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성으로 ,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 일행의 한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 원래는 과부로 , 그녀의 몸에 들린 일곱 마귀를 예수가 퇴치하였다고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 2016 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그녀의 기념일이 (7 월 22 일 ) 축일로 승격되었습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과 예수님을 무덤에 모실 때 ,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에 모두 등장하며 , 특히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한 첫 증인이란 점을 4 복음서가 공통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이를 널리 알린 사람으로 교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   초기 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 유대교의 뿌리를 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몰래 빼돌려놓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헛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 마태 28,11-15). 부활 사건과 그 사

주님 수난 예식 강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 그분께 무슨 말씀을 ....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합니까 ? 서기 30 년 4 월 7 일에 ‘ 골고타 ’, 해골터라고 하는 언덕에 강도 두 사람과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리면 , “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 코린 1,18).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설파합니다 . “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 코린 1,22-25).   우리는 그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뿐입니다 .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오늘부터 교회는 사순절을 끝내고 파스카 성삼일을 지냅니다 . 그 첫날이 주님의 만찬 미사입니다 .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과월절 식사를 하십니다 . 이 과월절 식사는 유대인들이 대대로 내려오는 빠스카 음식입니다 . 이집트를 모세의 인도를 탈출한 날을 기념하면서 , 하느님의 위대함과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대대로 기념하고 명하신 말씀을 따라 지키는 가장 큰 축제입니다 .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과 마지막 과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새로운 빠스카를 창시하십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성체 성사의 제정입니다 .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저 유명한 세족례 복음을 읽습니다 . 과월절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 예수님은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 발 씻김의 복음은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장면입니다 . 공관복음에서는 마지막 과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 성사를 세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 발 씻김의 예식은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충격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 유대인이 아닌 종이 유대인 주인의 발을 씻어주고 , 부인이 남편의 발을 씻어주는 게 관행입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발로요 겸손과 봉사의 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복음 시작 부분에 예수님께서는 “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라고 언급합니다 . 끝까지 사랑하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 그것도 신체 중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발이라는 유대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베드로 사도는 펄쩍 뜁니다 . 스승께서 자기 발을 씻겨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예수님을 너무나 부드러운 말씀으로 뼈있는 일침을 가하십니다 . 비단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에게 하신 것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지난주는 겨울이 다시 온 것 같았습니다 . 겨울이 쉽게 물러가는 것이 아주 서운했나 봅니다 . 그러나 춘분 (20 일 ) 이 지났기에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본격적인 봄바람과 봄 날씨를 만끽할 것 같습니다 . 이미 벚꽃과 개나리는 만발하였습니다 .   참고로 부활 대축일의 날짜는 성탄 대축일과 달리 매년 달리하고 있습니다 . 부활 대축일 날짜로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 325 년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 날짜를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결정하였습니다 .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로마 및 알렉산드리아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 이 결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대로 춘분 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에 부활 대축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 동방교회와는 성탄 날짜도 다르지만 부활 대축일 날짜도 다릅니다 . 가톨릭교회보다 늦습니다 . 그래서 동방교회의 올해 부활 대축일은 5 월 5 일입니다 . 2024 년 춘분이 3 월 20 일이고 보름이 24 일이고 , 그다음 주일인 31 일이 올해의 부활 대축일입니다 .   오늘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거행합니다 . 이날 가톨릭교회는 죽음을 향하여 당당하게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 그분과 함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따라 갑시다 . 오늘 함께 읽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복음은 마르코 복음을 읽습니다 . 예수님의 일생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수난 복음으로 읽습니다 . 묵상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   복음서 초반에 나오는 예수님께 비싼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 예수님 머리에 발라준 여자를 만났으면 합니다 . 이 여인에 대한 복음은 오늘 복음뿐만 아니라 , 마태 26,6-13; 루까 7, 36-50; 요한 12,1-8 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 일면 도유사화 ( 塗油

사순 제 5주일 강론

  지난 한주는 여름 날씨였습니다 . 많은 분이 봄 없이 여름이 온다고 담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이상 기후로 인해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 것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 이번 주부터 예년 기온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 변덕이 심한 일교차에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사순 제 5 주일입니다 . 사순시기도 막바지로 들어갑니다 . 다음 주면 성지주일이고 목요일부터는 파스카 성삼일입니다 . 사순시기 회개와 기도 , 자선을 통하여 잘 보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그리고 이제 예비자 교리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 세분의 예비 교우들이 세례를 잘 준비하도록 교우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사순 5 주일 만나는 예수님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은 말씀입니다 . “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이 말씀을 교우들께서는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 성서 주석학적을 보았을 때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시바작에 처형되셔야 보편적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즉 , 예수님을 뵈러 온 이방인들이 구하는 구원까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32 절에 나오는 “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 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다름 아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느님에게서 구원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구원의 편협함이 아닌 보편적 구원을 보여주셨습니다 .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갈등은 편협함과 보편성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 끊임없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되리라고 강조하시고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시며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보편성입니다 . 구원의 보편성을 위한 그 댓가로 예수님은 ‘ 밀알 ’ 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 그 밀알이 바로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