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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1

연중 제31주일 강론

  10 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 가을의 정점을 지나는 시점이 시작되었습니다 . 이제는 서서히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 환절기에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교회의 전례력도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으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 11 월 3 주 동안은 교회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주간입니다 . 또한 11 월은 위령성월입니다 . 대림절을 앞두고 우리 삶을 돌아보는 11 월이되었으면 합니다 . 그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11 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12 장으로 건너뛰어 ‘ 가장 큰 계명 ’ 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아는 복음 말씀입니다 . 오늘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절의 말씀도 덧붙여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앞 절의 말씀은 예수님과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서 논쟁을 합니다 .   참고로 , 사두가이는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 때로는 바리사이와 함께 소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마태 3,7: 16,11012: 22,34). 이 사두가이는 이스라엘의 다른 집단 ( 핫시딤 , 엣세느 , 바리사이 ) 들과는 반대로 정치적 여당 성향이 뚜렷하였습니다 . 명사와 부자 , 대제관 가족과 귀족들이 서로 전혀 동질성이 없으면서도 이에 속하였습니다 . 유대 국가의 마지막 70 년간 정규적으로 권력의 최고 대표자인 현직 대제관이 그들 가운데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 이들의 신학 사상은 모든 혁신을 거부하고 되도록 오경만을 구속력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인 단체였습니다 . “ 조상전통 ” 이라는 바리사이 해석전통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묵시문학 종말론적 희망에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 사후에 이어지는 삶도 죽은이들의 부활도 없고 , 구원은 역사 안에서 실현된다고 , 천사의 존재도 거부하였습니다 . 이들은 옛 상태의 “ 구약성서 ” 와 완전히 일치해 있었습니다 .   이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일곱 형제와

연중 제30주일 강론

눈이 먼 장애가 있는 분과 ,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분 , 귀가 먼 장애가 있는 분들 중에 누가 가장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력을 잃고 사신 분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런 켈러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 교우분들 인생에서 태생 소경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 아니면 사고로 시력을 잃은 분들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 그분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신 경험이 있나요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여정을 시작하시면서 , 벳사이다에서 (8:22-26)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오늘은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 여정의 막바지에 들른 예리코에서 또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을 치유해주시는 장면을 복음으로 읽습니다 .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 즉 죽음이 기다리는 여정의 시작과 끝을 예수님은 소경의 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 수난과 죽음의 여정에서 시작과 마지막에 예수님은 생명을 선물을 주시고 , 여정의 과정 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   참고로 말씀드리면 , 예리코라는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도시이고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 예리코는 해수면 (sea level) 보다 850 피트나 낮은 도시이고 , 요르단강 계곡에 신선한 물이 솟아나는 지역에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 사해 (Dead sea) 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 기원전 8000 년경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 예리코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첫 정복지가 된 곳입니다 ( 여호 6).   바르티매오 소경은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 이때는 많은 유대인들이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는 시즌이기 때문에 , 바르티매오는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 순례를 가는 사람이나 순례하고 오는 사람들은 과월절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명절이기에 구걸하는 사

연중 제29주일 강론

  연중 제 29 주간 강론   예수님은 이번 주에도 계속해서 여정 (Journey) 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 마지막 종착역은 예루살렘입니다 . 예수님만이 그 종착지에 다다르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십니다 . 가까이서 따라가는 제자들도 당연히 모릅니다 . 몇 번에 걸쳐서 제자들에게 언급하였지만 , 제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적이나 구마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제일 가까운 제자들을 직접 교육 하십니다 . 제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제자 되는 세 번째 (On the way of Discipleship III) 길을 가르치십니다 .   오늘 복음 바로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정말로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씀하십니다 . “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 이런 말씀을 하셨지만 , 제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 그 모습을 보고 계시는 예수님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아마도 실망하신 모습을 역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찾아와서 자기 형제들 인사청탁을 하고 있습니다 . “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 그러지 않아도 제자들의 몰이해에 대해서 실망하고 계실 예수님께 ,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다른 제자들 모두 물리치시고 자기 형제들을 좌청룡 우백호 ( 左靑龍 右白虎 ) 가 되도록 인사청탁하는 형제들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이와 비슷한 복음이마태 20, 20 에 나옵니다 . 마태오 복음은 이 두 제자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두 아들에 대해 인사청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예수님 시대에도 어머

연중 제28주일 강론

아침 , 저녁으로는 쌀쌀하다 못해 춥다는 생각도 듭니다 . 아침 , 낮 , 저녁 그리고 밤 동안 기온차가 많이 납니다 . 독감 백신을 너무 과신하지 마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   중국의 진 ( 秦 ) 나라의 시황제 ( 始皇帝 ) 를 잘 아실 것입니다 . 영원히 살고자 백성을 동원하여 천하를 다 뒤져 먹으면 늙지 않는 약초 , 일명 불노초 ( 不老草 ) 구하여 오게 하였습니다 . 그러나 그런 약초를 못 구하여서 시황제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 인간은 영원 ( 永遠 , eternity) 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 나약하고 한계를 가진 존재이지만 그래도 영원성을 추구하는 아주 명석하고 똑똑한 존재인 것은 확실합니다 . 예수님 시대에도 영원에 대해 강렬히 열망한 젊은 친구를 오늘 우리는 만납니다 .   지난주와 같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가는 중에 예수님은 어떤 젊은 사람을 한 명 만납니다 . 다짜고짜 그는 달려와서 날름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묻습니다 .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젊은이는 예수님께 ‘ 선하신 선생님 (good teacher)’ 이라고 존칭을 사용합니다 .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동 . 서양을 막론하고 , 깊은 존경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이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에 관해서 어디선가 들었을 것 같습니다 . 그러면서 뜬금없이 ‘ 영원한 생명 ’ 을 얻는 방법을 정중하게 묻습니다 . 이 사람의 질문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 이 사람은 우리를 대신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 영원한 생명 ’ 에 대한 개념은 구약성서 안에서 상대적으로 후대에 발전된 개념입니다 . 이 개념은 실제 삶 후에 따라오는 죽음을 서서히 인식하게 됨으로써 발전하게 된 개념입니다 . 그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 계명과 율법을 현세에서 잘 지킴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 준수에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