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강론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다 못해 춥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침, , 저녁 그리고 밤 동안 기온차가 많이 납니다. 독감 백신을 너무 과신하지 마시고 건강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영원히 살고자 백성을 동원하여 천하를 다 뒤져 먹으면 늙지 않는 약초, 일명 불노초(不老草)구하여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약초를 못 구하여서 시황제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영원(永遠, eternity)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 같습니다. 나약하고 한계를 가진 존재이지만 그래도 영원성을 추구하는 아주 명석하고 똑똑한 존재인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영원에 대해 강렬히 열망한 젊은 친구를 오늘 우리는 만납니다.

 

지난주와 같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가는 중에 예수님은 어떤 젊은 사람을 한 명 만납니다. 다짜고짜 그는 달려와서 날름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묻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젊은이는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good teacher)’이라고 존칭을 사용합니다.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깊은 존경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에 관해서 어디선가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정중하게 묻습니다. 이 사람의 질문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은 우리를 대신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개념은 구약성서 안에서 상대적으로 후대에 발전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실제 삶 후에 따라오는 죽음을 서서히 인식하게 됨으로써 발전하게 된 개념입니다. 그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 계명과 율법을 현세에서 잘 지킴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 준수에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예수님 시대까지도 당연히 조상들의 전통이라 생각하고 내려왔으며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준수했다기보다는 율법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지적일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런 유대인들이 바로 바리사이들이며 율법 학자들과 사제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정말로 싫어했습니다. 계명과 율법이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 사람들을 옭아매는, 억압하는 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 위에 사람있지, 사람 위에 법이 있는 것이 아님을....

 

그런데 오늘 복음의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들을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당당히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도 이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라고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려서부터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서 12살부터 지켜왔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남자 아이들이 12살부터 계명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의 신념은 십계명을 모두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가능성은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의 관념과 전통을 송두리째 엎어버립니다. 복음에 나오는 이 사람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궁금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부족한 것 한 가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법이 새로이 제시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눔입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나눔에 관해서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 자선은 곧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예수님과 복음에 나오는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이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당신을 따르기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어려운 문제를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동안 마르코 복음을 읽으면서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제자 됨(Discipleship)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당하게 포기해야 하는 경우에 결단을 가지고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감하게 하느님 외의 것에 포기해 보세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모두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과감하게 포기할 때 어느 순간 두 마리가 내 손안에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을 과감하게 포기해보세요.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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