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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3

연중 제 30주일 강론

  어느덧 10 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이번 주는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덥기도 하였습니다 . 그러나 월요일부터는 다시 기온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 일교차가 크기에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 복음의 첫 구절에서 “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테 모였다 ”. 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기에 “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 ” 라고 할까요 ?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 복음 앞부분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복음 말씀의 앞 . 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오늘 복음 앞 부분의 내용은 22 장 23-33 절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   간단히 살펴보면 , 천사의 존재나 , 부활이나 영혼의 불사불멸을 부정하는 사두가이파들이 나옵니다 . 이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일곱 형제 이야기하면서 , 율법에 따라 첫째가 죽으면 둘째가 형수가 결혼하여 대를 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일곱 형제가 같은 형수와 살다가 모두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그러면 마지막 부활 때에는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 이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에 예수님은 ‘ 촌철살인 ’ 의 말씀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립니다 . 그 핵심은 “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 나아가서 “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하느님 ” 이시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 이 일로 인해서 “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 ” 다는 소문이 났고 , 이 소문이 바리사이들에게까지 들어갔고 이들이 한데 모였다고 오늘 복음은 시작합니다 .   공관복음에는 ‘ 바리사이 ’

연중 제 29주일 강론

  날씨와 기온과 바람이 가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절정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 목요일에는 교구청 건축기금 모금 담당자가 와서 총회장님과 모금위원장님 및 모금 위원과 회의를 하였습니다 .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 무엇보다도 개신교 교회와 함께 공유하여 사는 우리 본당공동체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 그러면서도 저희 본당의 생동감이 넘치는 본당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습니다 .   연중 29 주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의 비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과 유대인 지도자 집단과의 논쟁이 시작되는 복음입니다 . 이러한 논쟁은 다음 주 복음에서도 이어집니다 . 예수님께서는 3 주간에 걸쳐 직접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이 이제 더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 아님을 밝히셨습니다 . 이러한 비유를 듣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당연히 화가 나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런 말씀을 듣고 있던 지도자들은 이제 드디어 공격의 기회를 잡습니다 . 그것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동원하고 다른 협력자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   유대인들의 질문과 논쟁은 랍비 도식 (Rabbinic schema) 에 따른 4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 첫 번째는 율법에 관한 질문이라고 합니다 . 예를 들면 , ‘ 율법에는 이런 법이 있는데 .... 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 ?’ 라는 식의 질문을 통해 논쟁을 유도하는 형태입니다 . 예수님도 이런 형태의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 두 번째 타입은 조롱하는 질문을 통한 논쟁입니다 . 세 번째는 행위의 질문이며 , 마지막으로는 교훈적인 질문이라고 합니다 . 예수님께서 오늘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과 하시는 논쟁은 세 번째 도식의 질문을 통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는 것이냐 ?’ 라는 식의 질문입니다 . 행위를 통해서 꼬투리를 잡아서 논쟁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 황제에게 세금을 내

연중 제 28 주일 강론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 아침과 저녁은 이제 춥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 낮 기온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의 온도를 기록하지만 , 일교차가 많이 납니다 .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체온 조절하시기 바랍니다 . 지난주에는 손님 신부님들께서 미사 집전을 해 주셨습니다 . 과거에 몇 번 오신 신부님도 계셨고 처음 오신 신부님도 계셨습니다 . 한국이나 미국이나 갈수록 미사 참례 교우들의 숫자가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 지난주 우리 본당의 미사 참례 교우들을 보고 많이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본당 공동체의 큰 숙제인 성전 건립에 기도로 함께하겠다는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   오늘의 복음 말씀은 3 주 전부터 계속되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 첫 번째 주일의 비유는 포도밭 아들의 비유이고 , 지난주 비유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이고 , 세 번째 비유인 오늘의 말씀은 혼인 잔치에 초대된 손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 세 가지 비유가 모두가 하느님의 나라가 이제는 유대인들의 것이 아니고 이방 민족들에게로 옮겨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오늘 복음 역시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더 이상의 하느님 나라의 차지는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순종하지 않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 대신에 그리스도 교회가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 선택된다는 말씀입니다 .   성경학적으로 오늘 복음을 살펴보면 , 마태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 승천 후 , 많은 신생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 그들은 도무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서기 70 년 8 월 29 일에 1 차 유대 독립전쟁에서 실패하여 , 예루살렘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무참히 파괴되었고 로마군은 성전을 불살라버렸습니다 . 이때부터 신흥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을 상대로 선교를 포기하고 오로지 이방인들만을 상대로 선교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의 1-10

연중 제 27주일 강론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화요일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다 왔습니다 . 그전에 교우분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길이 너무 좋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 이번에 가면서 교우들의 말씀이 정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한국의 강원도 같은 산과 단풍이 모든 일행을 감탄의 환성으로 묶었습니다 . 한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환상적인 단풍이 우리 일행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 ,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연중 27 주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 ‘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 말씀입니다 . 오늘의 말씀은 마르코 (12,1-12), 루까 (20,3-19) 복음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 오늘의 비유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모욕적인 비유 말씀입니다 . 성서학적으로 오늘의 비유 말씀을 ‘ 특례비유 ’ 라고 합니다 . 특례비유란 예수님께서 일상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형적인 사건을 이야기하시는 일반비유와는 달리 , 어쩌다 한 번 있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을 꾸며낸 이야기를 말합니다 . 오늘 비유 말씀의 의도는 제 1 독서와도 연결이 됩니다 . 이사야 예언자는 포도밭을 이스라엘로 비유하고 , 포도밭 주인이 열심히 정성을 다해 가꾸고 좋은 포도가 나기를 기대했지만 들포도가 열였다고 합니다 . 그 열매를 보고 주인은 너무 실망한다는 내용입니다 . 복음 말씀에서도 하느님은 포도밭 주인이시고 , 포도밭 ( 이스라엘 ) 을 당신의 백성으로 마련하시고 그 백성을 지도자들 ( 농부 ) 에 맡기셨습니다 . 그리고 거듭해서 예언자 ( 종 ) 를 파견하시곤 하셨지만 , 그 지도자들은 예언자들을 배척하고 박해하였습니다 . 마침내 아들 , 예수님을 보냈더니 그 아들마저도 죽여 버렸습니다 . 이쯤 되면 , 우리는 이 비유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 이 비유 말씀을 유대인들의 오만 , 독선과 교만을 비꼬는 말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비유 안에서 예견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