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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pril, 2024

부활 제5주일 강론

  4 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미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 황무지 ’ 라는 시에서처럼 , 올 4 월은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한 4 월이었습니다 . 계절의 여왕인 5 월에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날씨를 기대해 봅니다 .   부활 5 주일 예수님은 지난주 지냈던 , 자기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의 모습에서 오늘은 당신을 포도나무로 묘사하십니다 . “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 라고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 지난주 착한 목자라는 말씀을 통하여 자기 계시를 하셨듯이 , 오늘은 참 포도나무로 자기 계시를 하십니다 .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을 목자와 포도나무로 비유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날씨 , 환경과 풍습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했던 민족이고 포도가 재배가 많았던 지역이라 ,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 오늘 복음은 포도나무 은유와 사랑의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15 장 1-17 이 한 단락이라면 , 오늘은 포도나무 은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용기를 주시고 계십니다 . 참 포도나무 은유를 통해서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를 잘 밝혀 주십니다 . 예수님의 계시 활동과 구원 활동의 원천은 성부 , 곧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 또한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 라는 은유는 예수님과 우리 신앙인들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   예수님과 우리 신앙인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 예수님과 한번 맺은 관계는 질기고 질긴 인연입니다 . 신앙인은 예수님과의 인연을 가꾸어야만 “ 열매를 맺을 수 있다 .” 의미입니다 . 이 말씀은 나아가서 예수님과의 인연을 비켜야만 하느님의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미 맺은 예수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합니다 .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 가장 먼저

부활 제4주일 강론

  4 월의 중순을 넘어 부활 제 4 주일을 지내면서 어느덧 4 월도 이제 두 주가 채 남지 않았습니 다 . 가톨릭교회는 부활 제 4 주일을 ‘ 착한 목자 주일 ’ 로 지내고 성소 (Vocation) 주일이라고 합니다 . 우리 주님께서 교회와 세상에 필요한 성직자와 수도자를 많이 불러주시기를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 우리 공동체가 한국말 미사를 시작한 시간이 50 년이 지났지만 , 아직도 성직자나 수도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 , 디트리히 본회퍼 , 아이티의 루이사 달오르토 수녀 , 모잠비크의 마리아 데 코피 수녀 , 튀르키예의 안드레아 산토스 신부 , 프랑스의 자크 아멜 신부 . 이 분들의 공통점을 우리 교우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앞의 두 분은 20 세기의 순교자들입니다 . 꼴베 신부님은 많은 분이 아실 것입니다 . 두 번째 분은 독일의 루터교 목사님이십니다 . 2 차 대전 때 히틀러에 반기를 들어서 교수형에 처형된 유명한 분입니다 . 세 번째부터는 최근에 순교한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와 성직자분들입니다 . 이분들은 교회를 위해서 , 신자들을 위해서 각자가 맡은 소임에서 충실하게 하느님의 종으로서 살다가 순교한 분들입니다 . 오늘 우리가 지내는 부활 4 주일의 또 다른 명칭인 ‘ 착한 목자 주일 ’ 의 착한 목자들이었습니다 .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 즉 ,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분은 당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 목자와 삯꾼 ’ 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 목자는 자기 양들을 잘 알고 있고 필요할 때는 양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 “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 라는 말씀은 목숨 걸고 피보호자를 돌본다는 의미입니다 . 이러한 요한 복음사가의 뜻은 예수님께서 인류

부활 제3 주일

  대구교구 북 . 남미 사제 모임에 잘 갔다 왔습니다 . 올해는 미국 , 캐나다에서 10 명 , 남미에서 4 명 , 일본에서 1 명이 참여하여 모두 15 명의 신부님이 모여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 선교사 신부님들의 애환과 보람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고 사제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꽃을 피우시는 가슴 뭉클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 또한 교포 사목 신부님 중에서는 공동체가 계속 작아지고 교우분들의 나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 공동체 유지가 어렵다는 걱정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교우들에게 보여주자고 다짐하면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 교우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부활 제 3 주일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약한 믿음에 채찍을 가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 루까 복음 역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는 , 지난주 요한복음에서처럼 “ 평화가 너희와 함께 ” 라고 인사하십니다 . 그러나 예수님의 반가운 인사와는 다르게 제자들은 “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 “ 왜 놀라느냐 ?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 그러면서 , 더 확실하게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 “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 라고 하시면서 , 제자들의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 제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나약한 인간이기에 , 비참하게 죽은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의혹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는 하겠지만 ,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함께 동고동락한 그 애정과 존경은 어디로갔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과연 이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께 사랑과 존경이 있었나 싶은 의심과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 한마디로 요약하면 , 예수님의 부활 • 발현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 무서움과 두려움 ’ 이

부활 제2 주일(하느님 자비주일)

  부활 대축일을 시작하면서 4 월이 시작되었습니다 . 봄 날씨가 따뜻한 봄 햇살은 온데간데없고 거의 매일 비와 강풍이 우리를 괴롭히는 실정입니다 . 하루빨리 따뜻한 봄 햇살을 기대해 봅니다 . 지난주 부활 대축일에는 많은 교우들께서 주님 부활을 함께 경축하였고 , 미사 후 점심 식사도 같이 나누었습니다 . 많은 교우께서 너무 좋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음식이 조금 부족해서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부터는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부활 제 2 주일로 부활 대축일 팔부 축일 마지막입니다 . 아시는 것처럼 교회는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은 팔부 축일을 지냅니다 . 이것은 부활과 성탄 대축일을 당일 하루만 경축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그 축일 기념하는 차원에서 팔부 축일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 또한 부활 제 2 주일은 하느님 자비 주일로 지냅니다 . 성 요한 바오로 2 세께서 2000 년 대희년 , 부활 제 2 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아주 많았던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시면서 , 2001 년부터 부활 제 2 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지내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부활 제 2 주일의 말씀은 계속해서 예수님 부활 사건을 묵상합니다 .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흔히들 ‘ 불신의 사도 ’ 토마스를 꾸짖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 사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토마스 사도가 아니고 부활하시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 첫인사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 부활하신 후 나타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평화가 너희와 함께 (Pax Vobis cum)” 라고 인사하십니다 . 예수님의 인사로 살아계실 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의 반응 의심도 하였겠지만 , “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 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 발현하신 사건을 두고 , 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