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May, 2022

부활 제6주일 강론

  토요일과 오늘 주일은 한여름 날씨입니다 . 전 세계가 이상 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 지구의 온난한 현상으로 계절에 맞는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각별히 건강관리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   부활절 이후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을 지금까지 읽어왔고 승천 대축일을 제외하고 성령강림 대축일 역시 요한복음을 읽습니다 . 요한복음은 아시다시피 공관복음과는 매우 다릅니다 .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은 교회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 소위 말해서 영지주의 (Gnosticism) 출현해서 교회를 혼란 시켰습니다 . 교부들에 따르면 이 시대의 영지주의자들은 두 가지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 곧 분리 그리스도론과 가현 그리스도론입니다 . 분리 그리스도론이란 역사적 예수와 초월적 그리스도를 아예 분리시킨 그리스도론입니다 . 역사적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 않았고 여느 사람들처럼 보통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초월적 그리스도가 내려와서 예수님에게 머물다가 수난 전에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님 홀로 수난했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영지주의 이론들이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 요한복음은 이러한 영지주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하여 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과는 다르고 내용이 예수님의 말씀이 처음엔 서로 말을 주고받는 대담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예수님 홀로 하느님과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담화로 바뀌고 있습니다 . 이는 요한복음 필자들이 예수님 사건의 의미를 꼼꼼히 묵상하고 복음서를 엮었습니다 .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승을 하직하시면서 협조자 성령을 주실 뿐 아니라 , 이별의 선물로 “ 평화 ” 도 주십니다 (27 절 ). 요한 복음서에의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

부활 제5주일 강론

  5 월의 날씨 역시 갈피를 못 잡는 상황입니다 . 전형적인 5 월은 사라지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햇빛이 그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 햇볕을 많이 쬐면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합니다 . 시간 나실 때마다 햇살과 많이 만나세요 . 저는 지난주 화요일에 몰몬교 성전에 갔다 왔습니다 . 495 를 타고 버지니아 가다 보면 오른쪽에 세 기둥이 쏟은 건물을 보셨을 것입니다 . 그 건물이 몰몬교 성전인데 50 년 만에 개방한다고 해서 갔다 왔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상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   오늘 부활 5 주일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 “ 서로 사랑하여라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아마도 이 말씀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 흔히들 하는 말로 ,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 예수님은 오늘 “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 이웃 사랑의 계명은 구약성경 레위기 19 장 18 절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 그런가 하면 불교의 석가는 자비 ( 慈悲 ) 를 가르쳤고 유교의 공자는 인덕 ( 仁德 ) 을 강조했는데 , 이것은 표현만 바뀌었을 뿐 성경의 이웃 사랑과 내용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웃 사랑의 계명을 “ 새 계명 ” 이라고 하셨을까요 ? 그것은 다름 아닌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 에 있습니다 . 예수님의 처신을 본받는데 새로운 점이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세족례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처신을 본받는데 (13,1-5),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그 헌신을 본받는 데 ( 요한 15,12-13: 1 요한 3.16) 에서 서로 사랑하는 새로운 모습 , 지극한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모범은 다름 아닌 십자가 위의 죽음입니다 . 그 죽음은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부활 제4주일 강론

  올봄에는 비가 정말로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 이번 주만 하더라도 비가 며칠 동안 왔습니다 . 봄에 비가 많이 오면 옛날부터 올해 농사는 잘되겠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 공동체도 여러 가지 농사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미국 오기 전에 한국에서 영화 ‘ 두 교황 ’ 을 선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러나 보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미국 와서 우연한 기회에 후배 신부가 와서 사제관 T.V. 에 네플렉스 (netflix) 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얼른 영화 ‘ 두 교황 ’ 을 보았습니다 . 정말로 잘 만들었다는 영화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물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는 흥행에 실패하였지만 ,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감명 깊은 영화였습니다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 교황직에 대해서 조금의 지식만 있어도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 영화 비평가들은 교황으로 선정된 두 배우가 현재의 두 교황님과 너무나 외모와 캐릭터가 잘 맞는다고 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 영화의 핵심은 중대한 결정을 두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 교황의 모습을 감명 깊게 담았습니다 . 일반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 교황이라면 좀 더 다를 것 같지만 , 두 사람 역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 세는 언제부턴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힘으로 살아왔었다 ’. 이런 답답한 상황을 영화는 기도 후 초를 끄자 연기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는 기현상으로 그려냅니다 . 교황은 사소한 일까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 당시 바티칸에서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급기야 비서가 구속되는 일까지 발생하였습니다 . 베네딕토 교황은 이 상황을 지나치지 않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 해결되지 않고 쌓여가는 교회 문제를 고민하던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