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강론

 5월의 날씨 역시 갈피를 못 잡는 상황입니다. 전형적인 5월은 사라지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햇빛이 그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햇볕을 많이 쬐면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고 합니다. 시간 나실 때마다 햇살과 많이 만나세요.

저는 지난주 화요일에 몰몬교 성전에 갔다 왔습니다. 495를 타고 버지니아 가다 보면 오른쪽에 세 기둥이 쏟은 건물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 건물이 몰몬교 성전인데 50년 만에 개방한다고 해서 갔다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상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부활 5주일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아마도 이 말씀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구약성경 레위기 1918절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교의 석가는 자비(慈悲)를 가르쳤고 유교의 공자는 인덕(仁德)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표현만 바뀌었을 뿐 성경의 이웃 사랑과 내용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웃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처신을 본받는데 새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족례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처신을 본받는데(13,1-5),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그 헌신을 본받는 데(요한15,12-13: 1요한3.16)에서 서로 사랑하는 새로운 모습, 지극한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의 모범은 다름 아닌 십자가 위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을 위한 희생이었고 그 보편적인 사랑 안에 우리 개인을 위한 사랑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도 이해되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하신 이 말씀의 실천에 있어서 사랑의 대상이 한 개인이 아니라 보편적 대상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보편적 사랑으로 시작되어만 우리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면 그 사랑이 이기적 사랑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 사랑이 더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기적 사랑에서 벗어나는 길은 모든 이를 사랑하려는 의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나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시나요? 죽은 부모, 형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전쟁으로, 인종차별로, 테러로 죽은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나요? 우리 본당의 모든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본당 교우분들 가운에 투병 생활하시는 분들을 기도 중에 기억하시나요? 나 자신의 잘못, 허물,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서 성찰하고 용서를 빌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느님이 아니라 당사자 개인에 가서 잘못을 용서해 주기를 과감하게 청하여 보셨나요? 이기적 사랑을 표방하면서 나의 편견과 집착이 아닌지 현재 사랑하고 있는 대상들이 누구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그 사랑은 구체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구체적인 대상이 바로 이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내 이웃이기에 기도해 주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구체적인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인류애와 보편적인 사랑을 운운하는 것 또한 자기기만이기도 합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능하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랑 내 중심에서, 내 판단에서, 내 결심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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