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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pril, 2022

부활 제3주일 강론

5 월의 첫 주일입니다 . 계절의 여왕이라는 5 월입니다 . 5 월의 시작으로 세상이 푸르름으로 바뀌며 , 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 또한 교회 전례력으로 5 월은 성모의 달입니다 . 우리 교우들이 묵주기도를 많이 하시지만 , 5 월에는 우리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마음을 모아 기도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 우리 본당 교우들이 일치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공통의 지향을 두고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늘은 주일학교 9 명이 첫 영성체를 하는 날입니다 . 우리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평생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부활 제 3 주일에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맡겨진 양들을 잘 보살피라고 무려 세 번이나 진심 어린 부탁과 명령을 하십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21 장은 요한 복음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1 장은 교회의 사명과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성서 학자들은 이 21 장을 생명의 양식으로 사람을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사람들을 데려오라는 교회의 사명을 드러내는 상징적 이야기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 또한 두 번째 부분은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며 ,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그에게 맡기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 특별히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 내 양들을 돌보아라 (Feed my lamb, tend my sheep ποιμαίνε τα πρόβατον , feed my sheep)” 라는 말씀을 무려 세 번씩이나 하십니다 .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를 목자로 임명하는 말씀입니다 .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 요한 10;1-18).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에게 목자로서의 특별한 몫을 주십니다 . 예수님을 닮아 착한 목자 역할을 충실히 하라는 명령입니다 . 착한 목자는 다름 아닌 양

부활 제2주일 강론

  부활 대축일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 비록 날씨가 좀 쌀쌀했지만 , 지난 부활 대축일에는 많은 교우들이 오셨습니다 . 30 년 만에 고해성사하신 분도 계셨고 , 펜데믹 이후에 처음 오셨다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 부활이라는 사건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분명하게 제일 큰 축일임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 ( 刻印 ) 되어 있는 것은 분명한 같습니다 . 미국 본당에 나가시던 분들도 그날은 우리 공동체에 찾아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 많은 교우분들과 함께 부활 대축일 미사를 하게 된 저도 너무 좋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 앞으로도 많은 교우분들이 함께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 부활 제 2 주일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발현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 분명히 제자들은 몇몇 여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 돌무덤에 묻히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 그러나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 당황하기도 하면서도 그리고 의심을 가진 상태에서 서로 모여있었습니다 . 그 모임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 그들의 모임에 나타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표정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물론 우리 각자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 며칠 전 , 아니면 몇 달 전에 에 돌아가셨던 아버지나 어머니가 여러분 앞에 나타나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 돌아오신 스승을 보고 있는 제자들의 심경은 어떻게습니까 ? 우리가 쉽게 말하는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 라고 생각하고 말할 것입니다 . 정말로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 며칠 동안 이상한 소문에 마음이 뒤숭숭한 제자들은 소문이 소문이 아니라 진실임을 참말임을 확인합니다 . 오늘 복음은 “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 라고 전합니다 . 제자들은 정말로 스승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 . 그러나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더욱 확실하게 하려고 몸소 “ 두 손가락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

주님부활 대축일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 함께 기뻐하며 , 우리 교우들 몸과 마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평화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서기 30 년 4 월 7 일 금요일 오후 3 시에 예루살렘 성 밖 골로타라는 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 그 사건이 있고 나서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동고동락 ( 同苦同樂 ) 하였던 제자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 제자들에게 남은 것은 실패 , 절망 , 어두움 , 후회 밖에는 없었습니다 . 그들은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이러한 상태에서 제자들은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는 중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 소문은 다름 아닌 십자가형을 받아 비참하게 죽은 스승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 심지어 마리아 마저도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 그 소문이 헛소문일 것이라고 단정을 지은 것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여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 오늘 대축일 미사의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 오늘 복음에 이어서 나오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 오늘 복음에서는 이른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혼자서 무덤을 찾아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 어머니 마리아에서부터 다른 제자들은 아들과 스승의 무덤을 보러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새롭게 인생을 살게 된 마리아 막달레나만 걱정이 되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막달레나의 마음이 인간 된 도리로서 찾아간 것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넘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인지상정 ( 人之常情 ) 할 수 있겠습니다 .   제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절대로 아니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 왜 하필이면 , 주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냐고 의문

성지주일 강론

  성당 화단에 꽃들이 핀 것을 보고 이제는 정말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꽃들이 피고 잔디의 색깔이 파릇파릇하게 올라 오는 것을 보면서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느낌을 받습니다 . 어떻게 생각하면 사순시기가 겨울에 시작하여 40 일이 지난 시간은 부활을 알리는 동시에 봄의 정취를 물씬 느끼는 시간임을 아는 것이 행운이며 축복이다는 생각을 합니다 .   오늘은 사순시기의 절정인 성지주일이고 월요일부터는 성주간을 지냅니다 . 공식적인 차원에서 사순절이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이번 수요일로 끝이 납니다 . 성목요일부터는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 원래 성삼일은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 . 부활 주일로 이루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죽음 ,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였습니다 . 즉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각각 따로 떼내어 기념하기보다 부활과의 연관 속에서 함께 기념하였습니다 . 그러나 중세에 와서 성삼일의 개념이 구세사 ( 救世史 ) 적인 의미보다 복음서에 나타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바뀌게 되자 , 성 목요일도 예수님의 최후만찬 , 즉 성체성사 설정과 예수님의 체포를 기억하는 날로 성삼일에 포함하게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평화 이후 빠스카와 관계있는 날들의 고유한 면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하여 3 일로 구분하여 구원사업의 여러 요소를 분해하였습니다 . 인류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 ( 顯揚 ) 사업을 예수께서 주로 당신의 빠스카 신비로 완성하셨다 .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 이것이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3 일이며 ,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나는 성 금요일 , 성 토요일 , 빠스카 축일이다 . 부활 전 3 일은 부활 사건을 체험할 수 있는 전례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지주일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신 그 장소가 되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미사 전에 성지 가지를 축복하고

사순 제5주일 강론

  봄 햇살이 간절한 한 주였습니다 . 겨울로 다시 돌아간 줄 알았던 한 주였습니다 . 이제는 제발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 모두가 간절할 것입니다 . 4 월의 첫 주일입니다 . 지금부터는 완연한 봄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 성당 화단에 이제 서서히 꽃들이 활짝 피기도 하였고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꽃들도 있습니다 . 날씨가 협조하지 않네요 . 우리 교우분들 마음에는 이미 봄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 2022 년 새봄을 만나면서 우리 마음도 봄 날씨처럼 화사하고 얼음이 다 녹은 것처럼 온화하고 따뜻하게 장식하였으면 합니다 .   사순 5 주일 복음은 지난주 복음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복음 말씀입니다 .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지난주 복음이 루까 복음에만 나온 것이라면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 오늘 복음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 첫 번째가 간음한 여인을 왜 예수님께 데리고 왔으며 , 둘째는 간음한 여인만 데려오고 남자는 쏙 빼고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 모세는 간음한 남녀 모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 신명 22,23-24). 이야기 흐름을 눈여겨보면 저들은 간음한 여인의 처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오로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워 그분을 처치하려고 저 고약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변하시든 저들의 마수에 걸려들게 마련입니다 .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라고 답변하시면 , 예수님께서 항상 강조해 오신 하느님의 자비의 복음은 호소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 이와는 반대로 ,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라고 답변하셨다면 , 예수님은 율법을 거역한 무법자로 몰렸을 것입니다 . 이에 예수님께서는 촌철살인 ( 寸鐵殺人 ) 의 말씀으로 그들을 모두 침묵하게 했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 “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