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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22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성혈 대축일

  오늘은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 지난주 목요일에 제가 부임하고 처음으로 봉성체를 하였습니다 . 물론 성당 아파트나 로리엔 양로원에는 이미 했습니다 . 그러나 집에 계시는 분들은 지난 목요일에 처음 방문하여 기도와 성체를 영해 드렸습니다 . 개인적으로 봉성체를 하면서 많은 묵상 거리를 마음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 특히 오늘 성체 성혈 대축일 지내면서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 ,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   봉성체를 하면서 집에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간절히 바라고 계신지를 보았습니다 .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들이 , ‘ 운전만 할 수 있어도 , 다리에 힘이 조금만 있어도 , 성당에 갈수 있는데 .... 너무 죄송합니다 . 이렇게 와주셔서 예수님의 몸을 영하게 해 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 하는 말씀들을 한결같이 하셨습니다 . 길게는 50 년 짧게는 20 년 신앙생활 하면서 주일에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습관적으로 성체를 영하였지만 , 현재는 육신의 허약함과 육신의 고통 때문에 성당에 오지 못하는 것이 , 결코 그동안의 신앙생활이 의무적이고 습관적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깨닫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성체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이 되고 , 살아가는데 활력을 불어넣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 건강하게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영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축복인지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   성체 성사의 근거는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오고 오늘 제 2 독서인 코린토 1 서에도 나옵니다 ( 마태 26, 26-29, 마르 14, 22-26. 루까 22, 14-20. 1 코린 11, 23-26). 요한 복음서에는 성찬례 제정 대신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 또한 요한복음의 6 장 48-59 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체 성사의 표현이라고 말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더운 여름 잘 지내십니까 ? 지난 수요일 밤에는 천둥 ,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지난주 성령강림 대축일 지내면서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 말씀드린 대로 성령께서 주신 은사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키워나가야 함을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시고 키워나가시기 부탁드립니다 . 교회는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주를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 을 지냅니다 . 작년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 오늘 대축일은 부활 대축일 , 승천 대축일 , 성령 대축일과는 다른 위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일명 ‘ 이념 축일 ’ 이라고 합니다 . 위에서 언급한 대축일들은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대축일입니다 . 그러나 오늘 지내는 삼위일체 대축일은 사건이 아니라 인간에게 ‘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 만드는 지성의 활동을 요구하는 축일입니다 . 교회는 성경의 말씀과 교부들의 해석으로 지성을 작용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이 더욱 충만하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은 우리의 지성으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교리의 신비를 더욱 믿음으로 성화시키기를 교우들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   성경에 구체적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언급한 경우는 없습니다 . 가톨릭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의 정의는 ‘ 하느님께서는 본체는 하나요 위는 셋이다 (Una Essentia Tres Persona).’ 역사적으로 이 삼위일체 교리가 정착하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논쟁과 때로는 거친 행위들이 동원되는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 결국 , 이 삼위일체의 신앙고백은 우리가 매일 기도나 전례예식 전에 하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로는 성호를 긋는 것이 우리의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이다 . 다시 말해서 , 간단하게 ‘ 셋이면서 하나인 하느님 ’ 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 가톨릭교회는 “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리

성령강림 대축일

  6 월의 첫 주일입니다 . 더운 6 월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교우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왔습니다 .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지난주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께서 공식적인 사목 방문을 하셔서 교우들과 함께 미사 봉헌하였고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 지난 화요일 가시면서 교우들에게 ‘ 환영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 라는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 저도 교우분들에게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 신학적으로는 성령강림 대축일을 그리스도교의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 다시 말해서 , 교회의 생일입니다 . 강론을 통해서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 그리스도교의 출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그리스도교의 교리 , 신학과 전통은 부활 사건으로 출발합니다 . 부활 사건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새 시대의 출발과 동시에 이제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큰 희망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 죽음이 모든 것이 끝임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 바로 예수님으로 말입니다 . 그분 스스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보여주었기에 , 우리는 그분에게서 다시 살아남을 보았고 그래서 그분께 희망을 두게 되어 , 지금까지 그 희망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은 부활 대축일의 복음 말씀입니다 .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평화의 인사와 함께 제자들에게 “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 성령을 받아라 .” 예수님께서 주신 성령은 ‘ 위로자 ’ 이시고 ‘ 보호자 ’ 이시며 ‘ 인도자 ’ 이십니다 . 부활대축일 이후 우리는 평일 미사에서 줄곧 요한복음을 읽어 왔습니다 . 승천 대축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이 가까워지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끝임없이 ‘ 위로자 ’, ‘ 보호자 ’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이고 우리를

주님 승천 대축일

5 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성모님의 달이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5 월도 벌써 다 지나고 마지막 주일을 보냅니다 . 승천 대축일 이며 대구대교구 교구장이신 조환길 타데오 대주교님께서 저희 본당에 사목방문을 오셨습니다 . 볼티모 한국 순교자 성당의 모든 교우들이 대주교님을 진심을 환영합니다 .   부활 대축일이 40 일 지난 오늘 ,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사실을 기념합니다 . 부활과 승천은 실제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넘어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뜻입니다 . 따라서 부활은 곧 승천이기도 합니다 . 마르코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고 “ 하늘로 맞아들여져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16,19) 고만 말합니다 . 마태오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옮겨 적으면서도 그 부분을 삭제하고 승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 오늘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고 , 베타니아 근처로 그들을 데리고 나가 축복하시고 ,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말합니다 .   오늘 우리는 제 1 독서로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더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 40 일 동안 자주 나타나셔서 사도들을 격려하시다가 예루살렘에서 ,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같은 사람이 집필하였습니다 . 그 저자는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삶에 대해 기록하고 , 사도행전에서는 그분의 뒤를 이은 사도들의 활동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 두 문서가 같은 저자의 기록인데도 승천 이야기는 각각 다릅니다 .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당일 승천하셨고 , 그 장소는 예루살렘 근처 베타니아입니다 .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고 , 제자들은 성전에서 날마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고 40 일이 지난 다음에 승천하십니다 . 그 장소는 예루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