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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November, 2023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교우분들 추수감사절은 잘 지내셨습니까 ?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셨으리라 생각 됩니다 . 오늘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지냅니다 . 그래서 이번 한 주간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주간으로 지냅니다 .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감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감사드리면서 우리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왕으로 모시면서 더욱더 겸손하고 모습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한 주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 최후의 심판 ” 장면이 나옵니다 . “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오면 .”, 사람의 아들이 모든 민족을 모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 예수님께서 최후 심판 이야기를 오늘 말씀이 예수님의 순수한 말씀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 예수님께서 생전에 당신 자신을 종말 심판관으로 여기셨다고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느님을 알리려고 애쓰셨지 결코 당신 자신을 선전할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   오늘 말씀의 본질은 하느님께서 임금님으로 인류를 심판하실 때 사랑의 실천 , 자비의 실천 여부에 따라 영원한 생명과 벌을 결정하신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가 불쌍한 이들에게 해준 사랑의 실천이 당신 자신에게 베푼 사랑의 실천으로 간주하고 계심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 세상 종말에 있을 하느님의 심판에서 각 사람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 인종이나 종교나 지성이나 부나 권력의 차이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최후 심판 때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사실은 ,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나 미움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자신을 직접 만났다는 것입니다 . 인간이 동료 인간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 , 반대로 동료 인간에게 보내는 무관심과 미움은 그 행위가 어떤 이름으로 이루어졌든지 하

연중 제 33주일

  추수감사절 주간입니다 . 한국에도 추석이 있듯이 미국에도 추수감사절이 다가옵니다 . 추수감사절의 역사는 1621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 그 해는 자신들의 종교적 자유를 위하여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메사추세츠주에 도착한 해입니다 . 그러나 혹독한 겨울을 거치면서 , 그 중 절반 가량이 목숨을 잃게 되자 , 청교도들은 주변에 있던 인디언들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옥수수와 다른 작물들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 그 다음 해 가을에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자 ,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가족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이는 좋은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 교회의 전례력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연중 주일입니다 . 다음 주면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며 마지막 연중 주일입니다 . 12 월 첫 주일부터 우리는 대림 시기를 맞이합니다 .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몇 주일 동안 세상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시시고 계십니다 . 지난주의 열 처녀 우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어 기다리는 삶을 말씀하셨고 , 이번 주에는 탤런트의 비유 말씀을 통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삶을 살기를 강력하게 권고하십니다 . 성경학적으로 이 비유의 원초적 의미를 두고 견해가 분분합니다 . 비유 이야기 전체의 흐름에 유의해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 1 탈런트의 값어치는 6,000 데나리온입니다 . 예수님 당시에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 1 데나리온은 10 달러 정도 됩니다 . 4 일 가족의 일년 최저 생계비가 250~300 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대로 돈을 맡기면서 그것을 밑천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 주인이 한참 후에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했는데 , 자기 재산을 부지런히 늘린 종들에게는 후한 상을 주고 , 전혀 재산을 늘리지 않은 게으른 종에게는 벌을 내린

연중 제 32주일 강론

   매년 늦가을이 되면 성당은 나무가 많아서 낙엽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 이상하게도 올해는 예년과 비교해서 조금 일찍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정점에 있습니다 . 여름 동안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준 잎들은 내년을 위해서 이제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인간이나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자기 시간과 역할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 그 시간과 역할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복음 말씀이기도 합니다 .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 성서학에서는 오늘 말씀에 대해서 의견들이 분분하기도 합니다 . 또한 오늘 말씀에는 무리한 요소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 친구 결혼식에 가면서 등만 마련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가 다섯이나 있다는 것 , 친구가 결혼하는 저녁때 열 처녀가 모조리 잠들었다는 것 , 슬기로운 처녀 다섯이 미련한 처녀 다섯의 간청을 매정하게 물리쳤다는 것 ,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구하느라 결혼 잔치에 좀 늦게 도착했다 하여 신랑으로부터 입장을 거절당했다는 것 , 무엇 하나 무리하지 않은 요소가 없습니다 . 그래서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러운 비유가 아니고 , 무리한 이야기 특성인 우화 ( 寓話 , allegory) 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 비유 (parable) 가 한 가지 큰 뜻을 품은 이야기라면 우화는 여러 가지 비교점을 보여 준다 . 이른바 우의적 의미는 다양합니다 . 바로 오늘 말씀에서 단락에 여러 가지 의미가 보입니다 . 신랑이 오는 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뜻하고 , 열 처녀는 예수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 신랑이 지체하는 것은 예수 다시 오심이 지연되는 현상을 , 신랑이 갑자기 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 어리석은 처녀 다섯이 잔치 집에 입장하지 못하는 것은 단죄의 심판을 뜻합니다 . 이상의 여러 가지 무리수 및 우의적 의미를 본다면 , 오늘 복음 말씀은 비유가 아니라 우화입니다 .

연중 제 31주일 강론

  11 월의 첫 주일입니다 . 11 월에도 교우분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 합니다 . 또한 위령성월이기도 합니다 . 세상을 떠나 신 부모 , 형제 , 친척 , 지인들을 위해 자주 기도 바치는 11 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오늘 복음 말씀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비난하십니다 . 이번에는 그 이전의 비유 말씀이 아니라 군중들과 제자들 앞에서 노골적이면서 직접적으로 그들을 비판합니다 . 성서학적으로 보면 , 23 장을 어느 성경학자는 유대교 심판 설교라고 합니다 . 23 장 전체는 “ 불행하여라 ” 라는 글귀가 많이 나옵니다 . 그 불행한 사람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 유별나게 마태오 복음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비난 하는 글이 많이 나옵니다 . 우리는 10 월 3 주 동안 관련된 비유 말씀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   마태오가 복음서를 쓴 80-90 년경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서 독립하였습니다 . 그렇지만 기성 종교인 유대교와 신흥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까닭에 둘의 사이는 적대관계였습니다 . 그래서 마태오는 유대교 열성파 바리사이들과 학구파 율법 학자들의 비리를 들추고 단죄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겸손과 봉사를 당부합니다 (8-12 절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 유대교 지도자들의 비리를 그리스도교 지도자들도 저지르기 쉬운 것이니 만큼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 사실 23 장 전체를 읽어보면 , 종교이면 누구나 저지르곤 하는 죄상을 낱낱이 들추고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 오늘의 복음은 교황님과 주교님들 그리고 사제들에게 하시는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 무엇보다도 본당 일선에서 사목하고 있는 우리 사제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 또한 저에게 하시는 예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하면서 반성하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교우분들의 기도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   무엇보다는 오늘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