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2주일 강론

  

매년 늦가을이 되면 성당은 나무가 많아서 낙엽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예년과 비교해서 조금 일찍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정점에 있습니다. 여름 동안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준 잎들은 내년을 위해서 이제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나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자기 시간과 역할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시간과 역할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복음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성서학에서는 오늘 말씀에 대해서 의견들이 분분하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에는 무리한 요소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친구 결혼식에 가면서 등만 마련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가 다섯이나 있다는 것, 친구가 결혼하는 저녁때 열 처녀가 모조리 잠들었다는 것, 슬기로운 처녀 다섯이 미련한 처녀 다섯의 간청을 매정하게 물리쳤다는 것,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구하느라 결혼 잔치에 좀 늦게 도착했다 하여 신랑으로부터 입장을 거절당했다는 것, 무엇 하나 무리하지 않은 요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러운 비유가 아니고, 무리한 이야기 특성인 우화(寓話, allegory)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비유(parable)가 한 가지 큰 뜻을 품은 이야기라면 우화는 여러 가지 비교점을 보여 준다. 이른바 우의적 의미는 다양합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서 단락에 여러 가지 의미가 보입니다. 신랑이 오는 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뜻하고, 열 처녀는 예수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신랑이 지체하는 것은 예수 다시 오심이 지연되는 현상을, 신랑이 갑자기 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처녀 다섯이 잔치 집에 입장하지 못하는 것은 단죄의 심판을 뜻합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 무리수 및 우의적 의미를 본다면, 오늘 복음 말씀은 비유가 아니라 우화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다시 오심이 지연되는 것에 방심하지 말고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앞일을 미리 알고 산다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작년 11월 한국일보에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 위령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 기고하였습니다. 인간이 자기 죽음의 날과 시간을 안다면 과연 행복할 것인가? 쉽게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얕은 생각으로는 충분히 자신을 조정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서부터는 자선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이기에 결국 죽기 직전까지도 자기 욕심을 채우다가 별 준비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가톨릭 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니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줄곧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 많은 종파가 세상 종말에 대해서 말해왔고, 심지어는 몇몇 종파들은 구체적인 날과 시간까지 정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예수님 재림을 운운하면서 종말론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 사이비 종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세기 들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7811월 남미 가이아나의 밀림지역 신앙촌 인민사원에서 발생한 923명의 집단 자살 사건이다. 또한 934월에는 미 텍사스주 소도시 웨이코에서 다윗파광신도들이 경찰과 51일간 대치 끝에 86명이 불을 질러 집단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잘못된 종말 신앙으로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인 자신들이 건강하지 못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육체에 건강한 정신(Mens sana in Corpore sano)과 건강한 신앙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은 현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름 아닌 건강하게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우리의 태도와 개인 신앙으로부터 시작해서 공동체 신앙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깨어 기다리는 삶의 시작임을 기억하면서 한 주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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