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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anuary, 2022

연중 제4주일 강론

벌써 1 월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 1 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 2022 년도 11 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많이 수그러졌다고 합니다 . 그러나 안심할 단계는 아니기에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1 월 마지막 주 , 연중 4 주일 복음은 지난주 복음에 이어집니다 . 안식일에 예수님의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난 후의 반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회당 사람들의 일부는 그분의 말씀 선포에 감명 , 감동과 떨림을 경험한 후 , 예수님에게 너무 좋은 반응을 보여줍니다 . 그러나 좋은 반응을 보인 사람들에 곧바로 이어져 나오는 반응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에 너무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 예수님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 그 거부 반응의 명분은 다름 아닌 가족사를 들먹이는 것입니다 . 현실을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른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심리학적 차원에서 그들을 보면 , 분명히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신 예수님에게서 그들은 감동 , 감명과 떨림을 체험하였고 , 그전에는 체험하지 못한 말씀 선포하시는 예수님에게서 그들은 말씀의 권능 , 권위 그리고 힘을 체험하였습니다 .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기 싫어하였습니다 .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 하느님 구원역사의 섭리하심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빼버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 그러면서 예수님의 가족사를 떠벌리면서 스스로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구약성서의 예를 드시면서 그들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 그 말씀들은 그들을 무시하는 말로 이해하였기에 , 예수님에게 대드는 모습까지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과 고향 사람들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이제 함께 삶을 살아왔던 고향 사람들 가운데 당신을 거부했던 사람들을 더는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갔으며 , 그들의 삶은 성서에서 다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 그들은 누구의 탓도 아닌 스스로 구원의 초대

연중 제3주일 강론

지난 20 일은 한국의 절기로 대한 ( 大寒 ) 이었습니다 . 미국에서도 그대로 통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지난 한주는 추운 한 주간이었습니다 . 교우분들 모두 건강 관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몸이 건강해야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   오늘 연중 3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사람들 앞에 읽음으로써 , 메시아로서의 첫 활동을 시작합니다 . 누구에게나 처음 시작하는 일은 가슴 설레게 하고 , 사람들의 반응과 결과를 궁금하게 합니다 . 오늘 회당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언서를 읽고 해석하신 그 말씀의 권위에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 “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 라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로 향은 그 눈빛은 어떤 눈빛이었습니까 ? 다름 아니라 예언서를 읽으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 아마도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힘을 각 사람의 마음에서 작용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 또한 그분에게서 암울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을 것이고 무엇인지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막연한 희망을 보았을 것입니다 .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 이어지는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접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예수님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분의 힘과 권위가 있는 말씀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 오늘 복음의 도입 부분에서는 루가 복음 1 장 1 절의 말씀을 첨가해 놓았습니다 . 다른 복음서들과는 다르게 , 루까 복음은 복음서를 쓰게 된 경위를 붙여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 어떤 저자가 예수님께 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을 보았고 그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였고 , 그래서 자기도 이러한 증언들을 정확하에 조사해서 다시 정리해서 테오필로라는 사람에게 보내준다는 내용입니다 . 이 말의 핵심은 저자가 쓴 내용이 참되다 (truth) 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서 ,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들이 꾸며진 것이거나 조작된 것이 아님을 한

연중 제2주일 강론

  2022 년 새해도 벌써 중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 오늘이 벌써 셋째 주 주일입니다 . 우리 교우분들은 올해는 어떤 삶의 목표를 정하셨나요 ? 나이가 많아서 삶의 목표가 필요 없다는 분도 계실 것이고 , 아니면 작은 목표라도 정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 모든 분이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성숙하고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알게 모르게 기도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지향을 가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지혜롭다는 것은 나아가서 정확한 식별과 판단을 잘해서 , 침묵할 때는 침묵하고 당당하게 말할 때는 말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올해는 좀 더 성숙해지고 지혜롭게 살았으면 합니다 .   연중 제 2 주일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나라는 동네의 결혼 잔치에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참석하셔서 신랑 . 신부와 그 가족들을 축하해주시고 , 여흥을 즐기시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그런 중요한 행사에 제일 중요한 술이 떨어지면서 , 그 소문이 마리아에게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아들 예수님께 가서 그 이야기를 잠깐 하십니다 . “ 포도주가 없구나 ” 라고 하시고 , 퉁명스럽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반응에는 안중에 없고 , 일하는 사람들에게 “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 고만 말씀하십니다 .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 내용을 가만히 일고 묵상해보면 대충 그 의미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다시 말해서 , 아들과 어머니의 마음이 겉으로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어머니의 부탁에 순응하시는 모습입니다 . 어머니는 아들의 능력을 알기에 , 그저 지나가면서 아들에게 살짝 부탁합니다 . 어머니의 부탁에 퉁명스럽게 대답은 하셨지만 , 어머니의 부탁이고 당신의 능력을 드러낼 시간임을 어머니와 아들이 일치하는 모습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받고 “ 부인 ” 이라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세례 축일

오늘부터 교회의 전례력은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로 들어갑니다 . 대림 시기 동안 우리는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렸고 , 성탄 시기 동안에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 오신 예수님을 마음을 다하여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 이제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 메시아로서 공적인 활동을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그분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그분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은총을 많이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코로나 바이러스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이때 ,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도록 은총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오늘 루까 복음을 우리는 읽습니다 . 루까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이 아주 간단하게 나옵니다 . 지난해 , 주님 세례 축일 강론에서 세례 장면은 공관복음에 모두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공관복음 세 군데에서 나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 그런데 세 복음서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좀 다른 면들이 있습니다 .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인 마르코 복음은 “ 예수님께서 요르단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 마르 1,9) 고 전합니다 . 그다음에 쓰인 마태오 복음은 마르코 복음을 참조하면서 조금 더 첨가합니다 .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에게 , “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 마태 3,14). 이에 예수님께서는 “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 라고 응답하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 이에 반해 , 루까 복음은 마르코와 비슷하게 아주 간략하게 전합니다 . 또한 두 복음서와 다른 것이 루까 복음에서는 나옵니다 . “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 라고 서술합니다 . 이 구절은 다른 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   왜 루까 복음 저자는 “ 온 백성이 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