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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23

연중 제6주일 강론

2 월도 중순으로 넘어가다 보니 태양의 길이가 많이 길어졌음을 가끔 느낍니다 .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평일 아침 미사를 2 월 들어와서 못 드렸습니다만 해가 빨리 뜬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 아직 춘분 (3 월 21 일 ) 은 한 달 이상 남았지만 그래도 서서히 봄이 오고 있습니다 . 저는 코로나와 몸살감기로 교우들 얼굴을 뵙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   오늘 연중 6 주일 복음은 지난주 복음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 지난주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하게 주문하셨습니다 . 연중 4 주부터 해서 마태오 복음 5 장을 읽고 있습니다 . 4 주일 복음은 산상수훈 , 지난주 복음은 소금과 빛의 역할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어서 나오는 4 개의 명제가 나옵니다 .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길고 많기에 오늘 복음은 생략해서 짧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였습니다 . 지난주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 예수님은 우리에게 “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라고 경고하십니다 . 그 뜻은 자명합니다 .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살 맛을 내는 소금 구실 , 세상을 두루 비추는 등불 구실을 하고 , 또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실천해서 더욱 큰 의로움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존경받는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 그런데 유독 예수님만이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맹비난 하였습니다 .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일반 대중들보다는 훨씬 더 거룩하게 살고 하느님과 가깝게 산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사람들을 심판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싫어하셨습니다 . 나아가서 자기들 스스로가 ‘ 의롭다 ’ 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 이들에게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고 살았기

연중 제5주일 강론

  2 월의 첫 주일입니다 . 어제 토요일 4 일은 절기로 입춘 ( 立春 ) 이었습니다 . 봄이 온다는 절기로 24 절기 중에서 첫 번째 절기라고 합니다 . 이번 겨울은 춥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무난히 가는 것 같습니다 .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만 눈도 한번 안 오고 쉽게 겨울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 그러나 아직은 모릅니다 . 큰일 없이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   작년 12 월 1 일 대한민국 부산 어느 호텔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 그 행사는 2022 년 ‘ 생명 나눔 기증자 ’ 기념행사였습니다 . 같은 슬픔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사연을 듣고 나누는 행사였습니다 . 특히 자식을 앞세운 부모님들의 한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아마 죽어도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아픔일 것입니다 . 친구 같은 아빠가 돌아가셔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예쁜 딸 , 출근하고 한 시간 만에 교통사고로 뇌사 당한 아들 , 동생을 잃은 슬픔 , 교통사고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엄마의 가슴 미어지는 외침의 편지 낭독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 참석자의 말에 의하면 , 많은 사연이 모인 자리라 계속 눈물이 나는 행사였다고 합니다 . 여기 모인 가족들은 한 마디로 아직 하늘로 간 가족들과 이별을 못 한 분들이었습니다 . 여기에 모인 가족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가 세상을 하직하고 하늘나라로 가면서 자기 안에 있던 건강한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분들의 가족입니다 . 그래서 그 장기를 기증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분들도 함께 자리한 행사였습니다 . 장기 기증자와 그 수혜자들이 모인 아름답고 , 거룩하고 별이 반짝이는 날이었고 행사장이었습니다 . 그 행사장 입구에 이러한 작은 간판 (banner) 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 “ 별을 그리다 ! 이제 , 당신은 저 높은 하늘의 별이 되어 빛납니다 . 당신이 우리에게 준 희망을 기억합니다 . 선물처럼 주신 희망 ,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