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March, 2023

사순 제 5주일 강론

  3 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봄을 알리는 절기가 다 지나갔습니다 . 지난 21 일은 진정한 봄을 알리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경칩과 청명의 사이인 춘분 ( 春分 ) 이었습니다 . 이제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 봄바람 많이 맞으시고 봄 햇살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사순시기가 이제 막바지로 들어갑니다 . 사순 5 주일이 지나면 성주간이 시작되고 그리스도교 최대 축제일인 빠스카로 들어갑니다 . 얼마 남지 않은 사순시기 거룩하게 더욱 매진하시기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사순 5 주일 복음은 죽은 라자로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 오늘의 복음은 공관 복음에는 나오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일곱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1-11; 4,46-54; 5.2-9; 6,1-15,16-21; 9 장 ; 11 장 ). 요한복음의 필자는 기적을 ‘ 표징 ’( σημε ῖ ον . semeion) 이라 하는데 요즘 말로는 상징이라 합니다 . 그렇다면 요한복음의 기적은 무엇을 가리키는 상징이라 생각하십니까 ?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순시기 주일 복음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드러내는 상징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난주 (4 주일 ) 복음인 태경 소경의 치유 기적이나 , 3 주일 복음인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나 , 2 주일 복음이었던 변모하신 예수님 이야기들은 결국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징들 가운데서 맨 마지막 표징이며 가장 두드러진 표징이기도 합니다 .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고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 반대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의결하기도 하였습니다 (11,45-53). 라자로를 살아

사순 제 4주일

  사순시기도 이제 중반으로 들어왔습니다 . 사순 4 주일은 사순절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 회개와 자선의 삶을 지향하며 시작한 사순시기가 구원과 은혜의 시간으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굳어져 가는 여정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 저는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 사순 5 주일 미사에서는 교우들과 함께 미사 봉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혼자 미사하고 혼자 기도하는 가운데 광야에서 40 일 동안 보내셨던 예수님을 만나곤 합니다 .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더욱 매진하며 자신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힘쓰도록 해야겠습니다 .   오늘 사순 4 주일의 복음은 태생 소경 치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 지난주 복음을 기억하십니까 ?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장면입니다 . 지난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구세주를 만났음을 깨달았으며 , 그 기쁨을 혼자 독점하기 보다는 마을로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 마을 전체의 주민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를 만났으며 예수님을 마을로 초대하여 이틀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 그들에게 내적인 구원과 외적인 구원을 동시에 체험하였습니다 . 지난주 복음을 기억해 보시고 마을 사람들이 받았던 은총이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 이방인 동네인 사마리아에서 그들과 머물렀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복음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복음을 읽었으면 합니다 .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선천적인 소경을 보셨습니다 . 이에 제자가 그의 장애가 누구의 죄로 인한 결과인지를 묻습니다 . 전혀 관계없는 것이지만 유대인들의 통념이 그렇습니다 . ‘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 건강 또는 재산을 잃는다 ’ 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 제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 라고 대답하시면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색다른 행위를 통해서 소경을 치유해

사순 제3주간 강론

  병원에 잘 갔다 왔습니다 . 교우들의 기도 덕분에 무사히 갔다 왔습니다 . 공동체의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하느님의 은총이 한곳으로 다가옴을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 앞으로도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곳으로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자비심을 청한다면 , 누구나 그분을 체험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그분의 은총 속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 지난 두 주 금요일 십자가의 길은 펜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구역장님들이 봉사하였고 , 10 일 금요일은 Cockeysville 구역에서 자원으로 봉사해 주셨습니다 . 고맙습니다 . 구역회 사정을 잘 모르지만 서서히 구역에 따라서 활성화되는 곳이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   사순 제 3 주일 복음은 유명한 ‘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 장면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지만 모르시는 교우들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 오늘 복음 말씀이 너무 길어 짧게 읽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 는 많은 묵상 거리를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 악습을 전통이라고 생각하며 고착되고 편협하고 재고할 수 있는 여유를 전혀 자신에게 주지 않고 , 무조건 지켜온 악습을 과감하게 깨어버리는 예수님을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성서학적으로 ,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왜 상종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 구약 시대 기원전 722 년에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멸망하게 됩니다 . 그때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였습니다 . 이때 아시리아왕은 사마리아에 살던 사람들을 유배 보냄과 동시에 사마리아 도시에 아시리아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살게 하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과 혼인을 맺게 되면서 서서히 율법을 멀리하게 되면서 남쪽 유대인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고 급기야는 더 이상의 하느님을 함께 믿는 종교 전통까지도 분리되게 되었습니다 . 그러한 전통이 예수님 시대에까지 내려오면서 유대인들과 사마리

사순 제2주일 강론

  3 월의 첫 주일입니다 . 3 월에도 우리 교우들 모두 하느님 사랑 안에서 은총과 구원의 사순시기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 6 일 월요일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입니다 . 옛말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손본다고 합니다 . 서서히 봄이 온다는 것을 실생활 안에서 표현한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돋보입니다 .   오늘 사순 2 주일의 복음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변모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 복음 말씀에 따르면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 , 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셔서 , 세 명의 제자들 앞에서 , 그들이 그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 그기에다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 ,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 복음은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다고 전합니다 . 대화의 내용은 전하지 않습니다 . 오늘의 복음 역시 지난주 복음과 마찬가지로 , 마르코 (9, 2-10) 와 루가 (9, 28-36) 복음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 사람이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면 충격을 받습니다 .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곤 합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베드로 사도는 자기도 모르게 이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나머지 , 초막 셋을 지어 같이 살자고 합니다 . 마태오 복음에는 베드로의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언급하지 않지만 , 마르코와 루까 복음에서는 베드로가 하는 말에 , “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하고 전하고 있습니다 . 너무나 충격적이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였다고 봅니다 . 마태오 복음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말씀은 오늘 복음 앞에서는 우리 자신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6, 24-28).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라

사순 제1주일 강론

  2 월의 마지막 주일이며 사순 제 1 주일입니다 . 2 월은 다른 달보다 훨씬 짧은 달이기도 합니다 . 겨울이 이렇게 조용하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 그러나 늦겨울 추위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건강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 사순절 시작하는 지난 재의 수요일에 많은 교우분이 미사에 참여하여 머리에 재를 받았습니다 . 아침 미사에도 많이 오셨고 저녁 미사에는 주일 교중 미사만큼 오셨습니다 . 주님께서 은혜와 구원의 사순 시기에 우리 교우들 은혜로운 사순 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   사순 제 1 주일의 복음 말씀은 사순 시기 시작하면서 항상 나오는 예수님의 유혹 장면입니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복음 말씀입니다 . 예수님의 유혹 장면은 공관 복음에 모두 나오는 장면입니다 . 공관 복음 세 곳에서 나온다는 의미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 동시에 오늘의 제 1 독서는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 과연 예수님께서는 왜 유혹을 받으셨을까요 ?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굳이 유혹을 받아야 했을까요 ?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님의 삶은 유혹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 히브 2,18; 4,15). 예수님은 죄외에 우리와 같은 분이십니다 . 그러기에 예수님의 삶에서 유혹은 당연히 올 수 있는 사건입니다 .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은 자신에 다가올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 십니다 ( 마태 26,39; 마르 14,32; 루카 22,39). 다가오는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 역시 예수님께로 향한 일종의 유혹이었습니다 . 오늘 복음에서는 본격적인 세 가지 유혹을 사탄으로부터 받으시는 모습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유혹은 고의로 예수님의 사명에 맞지 않는 힘을 사용하도록 하는 유혹입니다 .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사명을 유혹자는 임의로 다른 곳에 사용하도록 하는 유혹입니다 . 두 번째 유혹은 이기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