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라 (부활 제5주일)

                                                                     두려워하지 마라

                                                                             (부활 제5주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의 새 계명이 그렇게 새롭지 않아 보이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인데 무엇이 새로운지를 알아 들으려면 이어지는 말씀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이셨지만 한번도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죽음에 이르게 할 줄을 알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침묵하며 적대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동안 그런 사랑, 곧 신적인 사랑은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태생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남에게 완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어렵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부활대축일 아침에 교황님은 휠체어를 타고 나와서 전통적인 부활 강복을 하시고 베드로 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하느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부활대축일 강복과 만남을 나가기 전에 의료진에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강복하고 광장에서 그들 가운데에 머물렀던 모습은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지금 잘 되고 있어도, 행복해도 불안합니다. 언젠가 좋은 것이 사라지거나 일이 잘못되거나 행복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어떤 일을 내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부모로 사는 것, 혼인과 직장생활, 신앙생활과 인생의 모든 일에서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해 두려워합니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란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심지어 내가 죽는다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내어주는 것, 상처받는 것, 죽는 것 마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며,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1요한 4,18).

복음의 기쁜 소식이란 좋은 것을 더 좋게,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잘하고 있어도 더 잘할 수 있고, 내어줘도 더 내어줄 수 있고, 사랑해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끝까지 모든 것이 좋고 앞으로도 모든 것이 잘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사랑이며, 바로 요한 묵시록에서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느님의 거처가 우리 가운데 있고, 그분께서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죽음도 없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설혹 눈물을 흘리고 괴로움을 겪고 슬픔에 울부짖어도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을 넘어선 꿈을 꿉니다. 우리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살 수 있다, 곧 내 것을 챙기지 않고, 더 내어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음을 말입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이것이야말로 믿는 이에게 복음이자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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