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쯤 있나요? (사순 제 4주일)

                                                                  지금 어디쯤 있나요?

(사순 제4주일)

 

저는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삼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나 세살 위 형과 비교하며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성공하고 더 인정받고 싶은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늘 더 똑똑하고 더 착한 형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나이 스물셋에 가출을 합니다. 군대도 다녀왔지만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니 막말로 마음 가는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 큰 상처를 드렸습니다.

1998년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하고 IMF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할 때 저는 대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기업도 신규고용을 하지 않았기에 저는 중국으로 갔습니다. 한자녀 정책 때문에 나라에 등록되지 않은 십대 소녀들의 싼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한국 제조 회사였습니다. 중국사회 상류층이 된 것처럼 돈을 흥청망청쓰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어둡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입사한 동료가 부당한 사유로 해고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제가 그를 대변하고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복직되고 저는 대기발령을 받아 제 방에 감금되었습니다. 그때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돈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로 돌아가야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큰 아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번에는 출가하는 마음으로)다시 가출해 신학교에 입학하고 한티로 떠날 때 저는 부모님 때문에 신학교 입학을 포기한 형의 꿈을 대신 이룬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세상을 떠나 고귀한 삶을 살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낮춰보고, 죄인들을 미워하고, 부족한 동료 형제들을 무시하던 저는 점점 배움으로 머리만 커지고 마음은 식어가는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하느님 안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화내고 교만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보도록 기도하지 않고도 거룩한척, 공부하지 않고도 다 아는척, 속은 문드러져도 괜찮은척 했습니다. 아마 가장 평범했던 이 시기가 부끄러운 것은 신학생에서 사제가 되고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채 가장 속깊은 죄를 계속 지으면서도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저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어갑니다. 비록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고난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눈물과 상처, 고통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의 친구, 형제, 아들이 되어갑니다. 사람들이 저를 '신부님'이라고 부를 때 저는 '어떤 아버지가 되려고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바로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작은 아들, 큰 아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인내할 수 있고 가엾은 마음으로 용서하는 아버지, 언제까지고 기다리다가 버선발로 뛰어나가 탕자를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입니다. 작은 아들에서 큰 아들로, 마침내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길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 비교, 불평, 그리고 방탕은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큰 아들인체 살아갑니다. 크게 죄짓지는 않지만 판단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교만하고 화를 감추고 살아가는 큰 아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모습 아닌가요?

이제 인생 여정의 종착지로 넘어 갑시다. 비록 여전히 욕심많고 방탕한 작은 아들이거나 판단하고 미워하고 교만한 큰 아들이더라도 자비로운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자비로운 아버지 어머니는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면서 다른 사람을 인내하고 가엾은 마음을 잃지 않고 용서하고자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히 기도하면서 매일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고 매순간 조금씩 자신을 내어주고자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쯤 있습니까? '하느님과 화해하면서'(2코린 5,20) 아버지 품에 안겨 용서를 체험하고 이제 누군가의 자비로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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