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강론

 봄 햇살이 간절한 한 주였습니다. 겨울로 다시 돌아간 줄 알았던 한 주였습니다. 이제는 제발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 모두가 간절할 것입니다. 4월의 첫 주일입니다. 지금부터는 완연한 봄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성당 화단에 이제 서서히 꽃들이 활짝 피기도 하였고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꽃들도 있습니다. 날씨가 협조하지 않네요. 우리 교우분들 마음에는 이미 봄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2022년 새봄을 만나면서 우리 마음도 봄 날씨처럼 화사하고 얼음이 다 녹은 것처럼 온화하고 따뜻하게 장식하였으면 합니다.

 

사순 5주일 복음은 지난주 복음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복음 말씀입니다.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복음이 루까 복음에만 나온 것이라면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오늘 복음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가 간음한 여인을 왜 예수님께 데리고 왔으며, 둘째는 간음한 여인만 데려오고 남자는 쏙 빼고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간음한 남녀 모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명22,23-24). 이야기 흐름을 눈여겨보면 저들은 간음한 여인의 처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오로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워 그분을 처치하려고 저 고약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변하시든 저들의 마수에 걸려들게 마련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라고 답변하시면, 예수님께서 항상 강조해 오신 하느님의 자비의 복음은 호소력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라고 답변하셨다면, 예수님은 율법을 거역한 무법자로 몰렸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말씀으로 그들을 모두 침묵하게 했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어떤 성서 주석가는 이 말씀을 당신들 가운데 간음한 적이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시오라고 풀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 나이 많은 사람부터 떠나갔나요? 쉽게 생각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죄가 크다고 생각해서 떠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죄질에 문제가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것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능력이 되고 지혜롭게 판단하였다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 안에서 우리 각자는 자신을 더 잘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떠나간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잘 판단하여 침묵할 때는 침묵하고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할 때는 하는 그런 여유를 깨달아서 돌아가지 않았나 묵상해 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마지막에 둘만 남았구나. 가련한 부인과 자비만 남았구나(Relicti sunt duo, misera et misericordia).”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여인에 하신 말씀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 출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를 열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구에게나 잘못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스스로 하느님께 고백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고백하는 것은 진정한 고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들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고해성사를 남겨 주셨습니다. 고해성사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인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합니다. 고해성사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입으로 자기 잘못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것과 동시에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서 있던 자리에 나 자신을 세워 보면 어떻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잘못을 고백만 하면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고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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