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 (삼위일체 대축일)
십자성호
(삼위일체 대축일)
첫사랑, 로맨스는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지만 무모했던 감정은 대부분 실패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숙하지 못한 풋풋하기만 한 감정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경험한 혼자만의 사랑은 한계가 뚜렷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천상배필을 만납니다. 이제는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을 키워나가기 위해 애씁니다. 이 세상에 오직 한사람만을 위한 사랑에 헌신합니다. 남들도 우리 사랑을 알아볼 정도로 친밀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 좋았던 상대의 모습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둘만 있기를, 자신만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사랑이 집착처럼 여겨지고 둘 사이 관계도 점점 시들해져 갑니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두번 어울리다보니 둘 사이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신선함과 활력을 느낍니다. 배우자에게 말하지 못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하고 공감받고 위로를 느낍니다.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친구이자 이웃과 함께 공동체가 되고 서로 나누면서 성장해 가는 것을 느낍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랑의 길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자기중심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지만 진정한 사랑의 성숙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부부를 보더라도 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자기들끼리만 좋으면 그 사랑은 열매맺지 못합니다. 부부 사랑의 열매는 자식이며 가정공동체 안에서 부모가 될 때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혼자하는 것도, 둘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하느님 역시 성부와 성자,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구세주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다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를 고아로 남겨두지 않으려고 보호자이자 위로자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오직 사랑으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 삼위일체 하느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성호경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모든 것인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서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완전한 사랑을 선물하면 그 선물, 그 생명, 그 사랑이 성령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사랑의 표지가 십자가입니다.
베네딕도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그리고 그분의 겸손하고 연약한 사랑을 통해 전지전능하심을 드러내시는 하느님께 세상의 모든 권세와 지력보다 더 강한 분이심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자 성호를 그을 때 그것이 참된 십자표가 되게 합시다. 의미에 대한 생각 없이 알아볼 수도 없는 작은 몸짓으로 하지 말고 차분하게 커다란 몸짓으로 합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어깨에서 어깨로, 그리하여 그 십자표가 우리 전체, 곧 우리의 생각과 태도, 육신과 영혼, 신체의 모든 부분을 어떻게 동시에 포함하며, 어떻게 우리를 정화시키고 성화시키는지를 의식적으로 느낍시다.
옛날에는 집에 성수를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이 밖에 나갈 때 부모님이 이마에다가 십자가를 그어주었으며, 아직도 구교우들은 밥을 퍼기 전에 그 위에다가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인 순교자들은 죽음이 닥쳤을 때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십자성호를 그었습니다.
우리는 미사 시작에 큰 십자가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을 고백하며, 복음 봉독 전에는 작은 십자 성호를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긋습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시간 속에 나타나는 표징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사랑이기에 불멸의 희망입니다. 십자가의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넘어선 사랑을 하는 사람, 그 사랑에 진심과 열정을 쏟아 부을 때 그 사람은 가장 멋진 모습이 됩니다.
지난 주일 성전건축기금 마련 골프대회에 참가해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비가 억수로 왔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있었고, 모든 봉사자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신보다 더 큰 일에 열정을 쏟고 헌신하는 일은 공동체를 키우고 자라게 하며 구성원들도 함께 성장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처럼 함께 걷는 공동체, 나눔과 친교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오늘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성호를 그을 때 우리 역시 그 사랑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로 초대받았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사제는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하며 함께 할 것입니다.
다같이 크게 성호경을 그어봅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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