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 주일

 대구교구 북. 남미 사제 모임에 잘 갔다 왔습니다. 올해는 미국, 캐나다에서 10, 남미에서 4, 일본에서 1명이 참여하여 모두 15명의 신부님이 모여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사 신부님들의 애환과 보람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고 사제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꽃을 피우시는 가슴 뭉클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교포 사목 신부님 중에서는 공동체가 계속 작아지고 교우분들의 나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공동체 유지가 어렵다는 걱정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교우들에게 보여주자고 다짐하면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교우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부활 제3주일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약한 믿음에 채찍을 가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루까 복음 역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는, 지난주 요한복음에서처럼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가운 인사와는 다르게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그러면서, 더 확실하게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의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나약한 인간이기에, 비참하게 죽은 스승의 모습을 보면서 의혹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는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함께 동고동락한 그 애정과 존경은 어디로갔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이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께 사랑과 존경이 있었나 싶은 의심과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의 부활발현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서움과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인간에게 공포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과 발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성경은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의심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것에 대항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믿지 못함의 끝없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뢰라는 단어는 아주 긍정적인 단어이고, 이 단어가 개인에게 적용될 때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당신은 신뢰가 가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고맙다고 인사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사건은 인간의 본능적인 의심에 대한 종지부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그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부활 사건이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건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게 작은 신뢰를 보인다면 우리 자신에게는 예수님의 더 큰 신뢰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인간관계의 모든 출발은 상호 간의 믿음, 신뢰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신뢰,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 형제간의 신뢰, 사회공동체 구성원 안에서의 신뢰, 신앙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 사이의 신뢰....어느 한곳이든지 믿음과 신뢰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 신뢰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자신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님은 루까 복음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선포는 우리 자신과 예수님과의 신뢰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 가정이 유지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 신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나 자신 간에 굳건한 신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굳건한 신뢰가 현재의 나 자신이 되어있게 하였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뿌리가 됨을 기억하면서 한 주간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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