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 (사순 제2주일)
하늘의 시민
사순제2주일
여러분은 누구 말에 귀를 기울입니까? '부인이요.' 좋습니다. 그 부부는 평화로울 것입니다. '부모님이요.' 아주 좋습니다. 그 가정은 사랑이 넘칠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고 그 가운데 우리 관심을 싹 잡아끄는 놀라운 일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귀를 갖다대고 주의를 기울입니다. 문제는 많은 경우 사람들의 해석은 알맹이가 없고 그저 현혹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현혹하는 말은 듣고 싶은 말만 듣게 하고 그 말에 휘둘리다가 마음의 평화마저 잃게 됩니다. 나의 일상, 가족과 친구, 마음의 평화까지 잃어버리게 하는 남의 말은 도대체 어떤 말입니까?
여러분이 즐겨보는 유투브가 그런 것입니다. 유투버의 말을 듣다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고 화가 나서 마치 내 평생의 신념이 무너진 것처럼, 내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 우리 현실이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오늘 복음의 베드로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말합니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예수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려 같이 그곳에서 지내면 좋겠다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이성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변모와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에 넋을 잃고 허둥대며 그냥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구름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예수님 말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정치가, 선동가, 유투버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만이 귀 기울일만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 3,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일반 시민과는 다릅니다. 일반 시민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필리 3,19).
우리 마음을 흔드는 유투브 선동가의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다 이룰 수 없는 정치가의 말이 다 이루어질 것처럼 더 믿을 수 없는 말로 자기네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치는 점점 더 고도화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더 첨예해질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아무에게나 귀를 기울이고 정신을 빼앗기고 마음의 평화까지 내어준다면 우리가 들어야 할 예수님 말씀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세상 것, 지나가는 것에 목을 메지 않습니다. 대신 1독서의 아브람처럼 도저히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믿는 길을 선택합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실 때 아브람은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나이도 백살을 바라보는데 하느님 약속을 듣고,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창세 15,8)하고 물을 때 아브람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했겠습니까?
바로 그때 현혹하는 말이 유혹으로 다가오고, 인간적인 선동이 하느님 말씀보다 더 힘이 세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십니다'(창세 15,6).
"세상 사람들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시간과 정열을 낭비한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사랑하는 것뿐인데."
얼마전 돌아가신 대구교구 최영배 신부님의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분'(필리 3,21)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기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달콤한 감언이설이 아니라 주님의 몸을 먹고, 세상 것이 아니라 구세주를 고대합니다.
이것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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