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9주일 강론

 날씨와 기온과 바람이 가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절정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목요일에는 교구청 건축기금 모금 담당자가 와서 총회장님과 모금위원장님 및 모금 위원과 회의를 하였습니다.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신교 교회와 함께 공유하여 사는 우리 본당공동체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저희 본당의 생동감이 넘치는 본당이라고 칭송하기도 하였습니다.

 

연중 29주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의 비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과 유대인 지도자 집단과의 논쟁이 시작되는 복음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다음 주 복음에서도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3주간에 걸쳐 직접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이 이제 더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 아님을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비유를 듣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당연히 화가 나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있던 지도자들은 이제 드디어 공격의 기회를 잡습니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동원하고 다른 협력자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의 질문과 논쟁은 랍비 도식(Rabbinic schema)에 따른 4가지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율법에 관한 질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율법에는 이런 법이 있는데....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질문을 통해 논쟁을 유도하는 형태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형태의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두 번째 타입은 조롱하는 질문을 통한 논쟁입니다. 세 번째는 행위의 질문이며, 마지막으로는 교훈적인 질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과 하시는 논쟁은 세 번째 도식의 질문을 통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는 것이냐?’라는 식의 질문입니다. 행위를 통해서 꼬투리를 잡아서 논쟁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를 꼬투리 잡습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쟁점을 만들려고 하는 의도를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금은 인두세를 말하는 것으로 어린이와 노인만 빼고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 주민이면 누구나 내야 했습니다. 이들의 의도는 예수님께서 세금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시면, 민족의 배반자로 낙인찍어 몰아갈 의도이고,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 로마 제국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예수님을 국사범으로 몰아갈 의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단순한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으로 그들의 입을 막습니다. 일명 촌철살인으로 그들이 더 이상 악의를 가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기질(temperament)이 있으며, 이 기질이 자라는 동안 환경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가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 악의의 감정을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처음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고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제대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열등감을 많이 가졌던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분석은 자기 중심의 삶이 너무 강했던 사람들에게도 나타납니다. 무조건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으로 창조되었지만 한계를 가지고 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충고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과 유대지도층인 사제들을 비난한 것은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에 강하게 질책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적의를 가진 것은 올바르게 지적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음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는 겸손함을 가지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지만 같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솔직히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적의 보다는 선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같은 동료나 친구, 선배 후배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임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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