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천 주교님 (연중 제 22주일)

 

유경촌 주교님

(연중 22주일)

유경촌 주교님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제가 아는 수녀님 종신서원식에서 주례를 하셨는데 수십명이나 되는 신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보통 주교를 '교회의 왕자'라고 부르곤 하는데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란 가운데에서도 가장 빛나는 왕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유경촌 주교님의 소박한 모습, 군더더기 없는 강론, 미사를 드리는 정성을 저는 눈여겨 보고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후 그분을 다시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성모승천대축일에 주교님께서는 담낭암 투병 62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과 이어 전해지는 주교님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유경촌 주교님은 겸손과 가난을 몸소 사셨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찾아가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곳이 추모미사든 무료급식소든 철탑 위든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직접 운전해야 때는 20년도 넘은 프라이드를 타셨습니다. 세속의 명예보다는 섬김, 권위보다는 기도, 자신보다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셨던 그분은 “더 오래,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이것은 교회에만, 신앙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콜린스라는 유명한 경영학자 <Good to Great: 좋은 조직을 넘어 위대한 조직으로> 따르면 세상에서 오랫동안 성공하는 기업, 꾸준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기업은 가장 뛰어난 리더쉽의 가지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Professional Will(전문가적인 의지) Humility(겸손)입니다.

가장 뛰어난 리더는 탁월한 재능과 함께 진정으로 겸손해야 성공을 거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능력이 있어도 겸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8).

오늘 1독서의 말씀은 진정한 성공이란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겸손한 사람만이 누릴 있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는 자신의 능력만을 믿기에 주님의 권능이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그를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묻지 않으면 신자인 것을 밝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신앙에 대해 말하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젊잖은 사람들이죠. 저는 오랫동안 이것이 안타까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 신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가톨릭 신자들은 항상 가장 끝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미사 가장 뒷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겠지요.

그리고 우리 신자들은 온유합니다. 크게 소리내지 않고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자들은 '선물하는 사람보다 사랑을 받습니다'(집회 3,17). 한국에서 수십만 가톨릭 신자들이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고 떠나고 나면 자리가 원래보다 깨끗한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신자들이 드러나지 않게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있을 것입니다.

유경촌 주교님 같은 분을 목자로 가졌기에 행복한 우리입니다. 그분처럼 겸손하고 온유하며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준다면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고 세상 누구보다 성공하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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