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그대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그대로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어떤 사람은 행복한데 어떤 사람은 불행한 것을 보면 몹시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작고 가벼운데 왜 제 십자가는 유독 크고 무거운 것입니까?"

누구나 하느님께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럼 하느님은 세상을 떠나 죽은 자들이 지고 오는 저마다 다른 크기의 십자가를 보여주며, "저들이 지고 온 십자가의 무게를 달아보아라."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큰 십자가도 아주 작은 십자가도 모두 무게가 똑같습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십자가를 줄 때 누구에게나 똑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가볍게 안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산다. 나는 똑같이 공평하게 주지만 저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라는 십자가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가벼워 보이는데 왜 나의 십자가는 이렇게 무겁고 힘드냐고 묻는 우리에게 그대에게 가장 알맞은 십자가는 지금 그대가 지고 가는 십자가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가장 무거운 십자가인 것은 아십니까? 당신 속에 있는 수많은 당신이 모두 당신의 십자가이며, 당신 자신만큼 당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십자가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친구 수녀님이 한명 있는데 카르투시오 봉쇄수녀원에 살고 있습니다.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 창설된 카르투시오회는 철저한 봉쇄와 침묵, 고독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도회입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십자가는 변하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천년 넘게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카르투시오 수녀회는 2002년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충북 보은에 설립되었습니다.

수녀님의 일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정에 일어나 밤기도를 바치고 새벽 3시에 취침 후 아침 6 30분 기상과 식사로 이어집니다. 7시 일시경, 7 30분 삼종기도, 8시 미사, 9 30분 삼시경, 독서, , 11 45분 육시경, 12시 삼종기도, 식사, 휴식, 오후 1 45분 구시경, , 오후 4시 저녁기도, 자유기도, 식사, 저녁 7시 삼종기도, 끝기도, 저녁 8시 취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며, 식사는 주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독수처에서 채식 위주로 간단하게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산책시간이 있는데 이때 짝을 정해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 모원에서 파견된 외국 수녀님 네분과 신부님 외에 한국 수녀님은 열명이 있는데 이곳에서 두번째 한국 종신서원자가 친구 수녀님이기에 저는 영적 동반자 자격으로 일년에 한번 방문을 허락 받습니다.

친구 수녀님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온통 침묵과 고독, 기도로 이루어진 카르투시오 수도회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신입니다. 혼돈스럽고 불안한 나라는 십자가를 매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걷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일입니다.'

카르투시오 수녀님조차 자신이라는 십자가를 가장 무겁게 여깁니다. 이런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해야 할까요?

송봉모 신부님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등에 지고 가거나 땅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정히 품에 안고 가는 것입니다. 등에 지고 가니까 힘이 듭니다. 등에 무거운 것을 고통스럽게 지고 가는 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이기에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품에 안고 가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기 의지와 인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왕 자기 십자가를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떠밀려 등에 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품에 안고 가는 것이 십자가에 담긴 사랑을 깨닫고 고통 후에 올 성장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는 십자가를 품에 꼭 안고 갈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단 두 사람, 예수님과 바로 당신 뿐입니다. 치욕과 죽음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지시고 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부활하셨기에 십자가는 희망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나의 십자가를 품에 안고 걷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며, 십자가는 나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십자가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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