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0주일 강론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는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덥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는 다시 기온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일교차가 크기에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복음의 첫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테 모였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기에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라고 할까요?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복음 앞부분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복음 말씀의 앞. 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앞 부분의 내용은 2223-33절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천사의 존재나, 부활이나 영혼의 불사불멸을 부정하는 사두가이파들이 나옵니다. 이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일곱 형제 이야기하면서, 율법에 따라 첫째가 죽으면 둘째가 형수가 결혼하여 대를 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일곱 형제가 같은 형수와 살다가 모두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부활 때에는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이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립니다. 그 핵심은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서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다는 소문이 났고, 이 소문이 바리사이들에게까지 들어갔고 이들이 한데 모였다고 오늘 복음은 시작합니다.

 

공관복음에는 바리사이라는 단어는 자주 나오고 예수님께 항상 각을 세우는 집단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사두가이단어는 한번 나옵니다. 이 사두가이파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된 사제 가문이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사제들이 모두 사두가이파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로마제국으로 이스라엘 통치 권력이 넘어가자 로마 정치 권력을 인정하면서 서민 대중과 동떨어진 특권층의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사두가이들은 그들의 삶에서 철저하게 하느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분리하였으며, 이 세상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기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한 사두가이를 대신해서 바리사이파들이 율법학자 한 사람을 보내면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 역시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이기는 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자주 듣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역설하십니다. “하느님을 나약하고 불안전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이미 하느님을 아는 이상, 인간 전 존재를 바쳐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나아가서 동시에 함께 사는 사람, 즉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은 이 계명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고 요한복음은 새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유대교 613가지 율법 조문을 이 두 개로 압축하셨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그 무게는 율법 조문을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는 인색함이 없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하느님께 항상 의지하며 그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희생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개인의 간절함을 기도합니다. 그 하느님은 인간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기에,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과 관계없이 말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다가 기도의 반응이 없고 나에게 시련이나 불행이 오면 하느님께 돌아서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온전히 사두가이파들이 가지고 있던 형태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명은 바로 이웃에 관심과 사랑이 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이 이웃은 한 개인이 될 수 있고, 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서 국가, 온 인류가 될 수 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개인부터 세상에 관한 관심, 사랑과 진심 어린 기도가 필요합니다. 개인에게서부터 인류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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