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 강론

눈이 먼 장애가 있는 분과,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분, 귀가 먼 장애가 있는 분들 중에 누가 가장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력을 잃고 사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런 켈러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교우분들 인생에서 태생 소경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면 사고로 시력을 잃은 분들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그분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신 경험이 있나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여정을 시작하시면서, 벳사이다에서(8:22-26)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 여정의 막바지에 들른 예리코에서 또 바르티매오라는 소경을 치유해주시는 장면을 복음으로 읽습니다.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즉 죽음이 기다리는 여정의 시작과 끝을 예수님은 소경의 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수난과 죽음의 여정에서 시작과 마지막에 예수님은 생명을 선물을 주시고, 여정의 과정 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예리코라는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도시이고 가장 오래된 도시입니다. 예리코는 해수면(sea level)보다 850피트나 낮은 도시이고, 요르단강 계곡에 신선한 물이 솟아나는 지역에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사해(Dead sea)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기원전 8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예리코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첫 정복지가 된 곳입니다(여호6).

 

바르티매오 소경은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이때는 많은 유대인들이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는 시즌이기 때문에, 바르티매오는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순례를 가는 사람이나 순례하고 오는 사람들은 과월절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최대 명절이기에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자선도 많이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티매오는 예수님 일행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러한 소경의 외침에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바르티매오는 어디선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많은 기적을 베풀었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에게 매달이면서,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는 호칭을 예수님에게 붙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호칭이 복음서에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문학적인 차원에서 이 호칭은 다윗이 강림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 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다윗 왕조의 복귀와 영원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메시아 왕의 출현을 기다리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인생에 있어서 정상적인 삶으로, 정상적인 인간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확신합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더 큰 소리로 그분을 부릅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호통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인생의 마지막을 신앙고백으로 노래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보이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자기를 주목하며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이 보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을 맞는 순간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바르티매오는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 이라고 외치면서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바르티매오 소경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애원 이전에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만의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 무엇을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이 주보를 보고 계시는 분들은 분명히 소경은 아닙니다. 우리는 시력의 상태가 모두 다르지만, 이 주보를 읽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육체적인 시력은 좋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눈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마음의 눈이 멀지 않도록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눈이 멀면 육체의 눈도 멀어집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지면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정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져서 잘 보지 못하면 세상의 보이는 사물과 사람들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상이 나오고 비방이 생겨서 나의 어리석음만 보여줄 뿐입니다. 주님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르티매오 소경의 마음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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