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You (사순 제4주일)

 

I See You

(사순 4주일)

2004 크리스마스 다음날, 21세기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된 동남아시아 쓰나미로 2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LA 이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는 이민 당시 많은 도움을 개신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발생한 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은 때문이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요한 9,2)

많은 사람들-심지어 목사님을 포함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재난이나 고통 앞에서 이해할 없는 논리로 다가섭니다. 죄를 지어 벌을 받았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에 재앙이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하느님을 벌하는 , 인정사정 없는 무서운 재판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도 있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다른 사람을 단죄하기도 합니다. 마치 하느님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사무엘 예언자가 이스라엘 임금이 사람을 선택할 주님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보고 가장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볼까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지는 않는지, 마음으로 생각한대로 보는 것은 아닌지 물어봐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앞에서 '우리는 본다.'라고 생각하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치유로 눈뜬 사람을 보고도, 그의 부모를 불러 확인하고도, 당사자 말을 듣고도 믿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이 본다 라고 말할 있을까요?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상대에게 "I see you."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내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I see you! 우리도 이렇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한때 어둠이었던 우리는 잘못된 가르침과 자기 중심적인 생각 속에서 본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면서 불평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절망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빛이 왔습니다. 마치 어두운 안이 갑자기 환해진 것처럼 누군가 불을 켰던 것입니다. 은총입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14).

빛의 자녀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하는 속에서는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우리를 비추시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받게 것입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요한 9,35)

말씀은 '너는 제대로 보고 있느냐?' '죄의 어둠에서 벗어나 용서할 있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에 담긴 하느님 사랑을 믿고 하느님의 일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짐을 고백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주님과 함께 날마다 자기 십자기를 지고 걷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I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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