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온과 한나 ( 주님 봉헌 축일 )

 시메온과 한나

주님봉헌축일

 

이 시대에 노인은 누구입니까? 보통은 늙은 이, 할아버지 할머니, 은퇴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아픈 사람들, 생산적이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노인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닌 이, 'No-()'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1726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제정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전통을 전해주는 일에는 은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때 대구대교구는 70세가 되어 현직에서 은퇴한 사제를 '은퇴 사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복을 입은 은퇴사제가 교구 건물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데 경비가 말했습니다.

"요금은 5천원입니다." 은퇴 사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은퇴 사제요."

그러자 경비가 대꾸했습니다. "그러니 돈을 내야지요. 은퇴했으니 더 이상 사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후 교구는 은퇴 사제라는 말대신 '원로 사목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은 시메온과 한나 두 노인'의 기쁨에 넘친 증언을 듣습니다. 이들은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던 노인들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시메온과 한나를 가리켜 '하느님의 표징을 알아챌 수 있는 노년의 모범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대하고 품에 안았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것과 모두가 기다리던 구세주,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적인 노년에 들어선 이들은 겸손하게 증거하며 모든 사람을 위한 모범으로 권위 있는 어른이 됩니다. 영혼의 감수성을 함양해 온 노년은 세대 간의 시기, 원한, 비난을 소멸시킵니다. 노년의 떠남과 함께 도래하는 다음 세대에 오실 하느님을 위해서 말입니다. 노인은 때가 차면 삶에 작별을 고하며 다음 세대에게 삶을 넘겨줍니다. 시메온과 한나의 고백이 바로 영적인 노인의 기도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볼티모어 한인성당이 너무 고령화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이 기쁩니다. 왜냐하면 우리 본당에는 수많은 시메온과 한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고 희생하며 우리 본당에 가장 필요한 영적인 기초를 튼튼하게 합니다. 노인들은 우리의 보배입니다.

제가 대구대교구 교구청에 있을 때 어떤 신부님이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주교님이 어떤 결정을 빨리 하게 하려면 원로사제 두명만 있으면 된다. 그분들이 교구청에 와서 보행기를 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주교관 앞을 계속 왔다 갔다만해도 주교님께서는 그분들의 바램을 들어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본당 어르신들이 보행기를 밀고 성당에 와서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외면하시겠습니까! 영적인 노인의 기도는 하느님도 움직입니다.

"기억 없이 우리는 미래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기초 없이 우리가 절대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삶의 기초는 기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노인의 기억이 참으로 중요함을 가르치십니다. 우리 본당이 탄탄한 기초를 가지게 된 것은 노인들의 기억과 기도 덕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름을 숨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원히 젊은척 하면서 우리 나이를 감추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저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더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우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는 노년이야말로 자기 신앙의 증거를 맺기에, 특별히 젊은 세대를 위해서 완벽한 순간임을 강조합니다.

노년은 인생에서 결정적인 충만함을 위한 시작이라는 기쁜 소식을 퍼트리기에 가장 좋은 인생의 단계입니다. 노년은 약속입니다. 약속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최고가 올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세상 사람들이 끝이라고 상상하는 멋진 관()에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 그 너머로 넘어가기 위해 주어진 것이 인생입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통과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 우리가 최종적으로 있어야 할 목적지는 이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바로 영원히 사시는 주님의 곁입니다.”

요엘 예언자는 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

노인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며 미래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전하며 죽음 너머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젊은이들이 현실로 만듭니다.

비록 우리 본당에 젊은이가 많지 않다하더라도 우리가 노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강인한 사랑과 약함으로부터 지혜를 배운다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모든 세대가 어우러진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의 대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성장하는 기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계신 시메온과 한나를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화해 안부를 묻고 용돈을 드리고 사랑한다고 꼭 껴안아 주는 것이 기적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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