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강론

 9월과 10월에 본당의 행사가 세 번에 걸쳐 있습니다. 9월에 야외미사와 지난주 바자회를 하였고 10월 첫 주에는 본당 골프대회가 있습니다. 본당의 행사가 있으면 본당 신부는 당연히 행사에 많은 교우분이 오셔서 좋은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걱정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난 6월의 골프대회가 그랬고, 야회미사, 바자회를 준비하면서 고생하시는 봉사자분들을 보면서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매번의 행사를 통해서 알게 되고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 교우들이 제2의 예수 그리스도인 것도 알았습니다. 함께해 주신 교우들과 봉사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가을이 더욱 풍성해지고 의미 있는 가을이 되고 있습니다.

 

연중 26주일에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바깥사람에 대한 말씀이고 두 번째 단락은 죄를 단호하게 물리치느냐는 말씀입니다. 성서학적 측면에서 보면, 첫 번째 단락에 나오는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 27~30년경 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유대인들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기 30년에 창립된 교회에 들지 않은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마 행위를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사도 19,13-17). 이러한 배경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행들을 보았는데,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이유로 요한에 의해 제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말에 예수님의 반응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열린 마음과 태도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반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반대자들에게도 더 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루까 23,34).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분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산다면, 타인에 대해서도 개방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반대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나와 차이가 있고 다름이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모두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손해와 이익을 계산해서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차이와 다름의 공감과 인정은 사라져 버리고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주장하고 억지를 쓰는 경향이 누구나 있습니다.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절대적으로 자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나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거룩함의 시작은 자신의 거룩함을 추구하기 전에 타인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때 자신의 거룩함이 시작됩니다.

 

상대방의 거룩함을 인정하고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후반에 말씀하신 죄를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말씀에서 자신을 돌아볼 거리가 많습니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냉수 한 그릇이라고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본당 사목을 오랫동안 해온 동기 신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본당 신부와 생각이 다르고 사사건건 따지고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 교우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교우들을 미워하면 할수록 더욱 힘들고 피곤해 지는 당사자는 본당 신부라고 합니다. 그저 나와 조금 다르고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인내를 가지고 만나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합니다. 저도 우리 교우들 이해와 배려를 통해 포용하면서 스스로 죄짓지 않고 나아가서 상대방이 죄짓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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