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일 강론

 8월의 첫 주일입니다. 8월에도 교우분들 하느님 사랑 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목자로서의 제일 큰 소망은 본당의 모든 교우분이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되고 행복하게 사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겠지만 그래도 신앙 안에서 희망을 품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장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라는 속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인간의 3대 욕망 중, 첫 번째가 식욕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상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민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오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는 많은 북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숫자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2010년대에는 1년에 탈출한 분들이 3000명을 헤아릴 때도 있었습니다. 대구로 정착지가 결정된 분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교육을 2년 정도 하였습니다. 교육할 때마다 물어보았습니다. 왜 탈출했냐고? 한결같은 대답은 잘 먹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탈출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 삶에서 첫 번째입니다.

 

1 독서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만을 모세는 들었습니다. 불평, 불만 가운데 하는 소리는 이집트에 있을 때는 삶이 고달팠지만 그래도 먹기는 잘 먹었다고 합니다. 고기도 야채도 어느 정도는 먹었다고 말합니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 모든 것을 참고 모세를 따라 나왔지만 배고픔만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1차적인 본능이 침해당하기에 항변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1차적인 본능이 해결되어야만 다른 차원의 욕구를 향해 갈 수 있는가 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다른 욕구를 찾습니다. 그 욕구가 본능적인 차원에 머물 수도 있고 아니면 본능을 초월하여 더욱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 즉 고차원적인 욕구를 찾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욕구에 머무르지 말고 본능을 뛰어넘어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이 신부님은 프란치스코회 사제로, 1930년에는 일본에도 계셨던 분입니다. 폴란드로 돌아가셔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명이 탈출한 사건으로 인해, 독일군은 10명의 사람을 무작위로 뽑아 총살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 총살 10명 중에 한 명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을 꼴베 신부님이 보시고 자기가 그 사람 대신에 죽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꼴베 신부님이 그 대상에 포함되었지만, 독인군은 신부님을 총살 대신에 굶겨 죽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님은 굶주려도 죽지 않았기에 독극물 주사를 통해 죽였습니다. 무엇이 꼴베 신부님으로 하여금 대신 죽게 만들었으며, 굶겨 죽이기로 하였지만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겠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힘을 초월하여 영적인 힘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뒷이야기에는 많은 독일군인들이 신부님의 초월적인 힘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전쟁 후 많은 독일 사람들이 추모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합니다. 세례의 근본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본능을 초월하여 영적인 힘을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힘이 강하면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도 가치 있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궁극적인 목표에 두고 살면,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나 남에게 돋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 개인의 영적인 힘의 정도를 가늠하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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