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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ugust, 2024

연중 제 22주일

  볼리비아에 잘 갔다 왔습니다 . 피정 지도를 하면서 저도 후배 신부님들과 함께 피정하였습니다 . 후배 신부님들이 선교사로서의 사명에 충실한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 고생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기쁘게 살려고 하는 모습에서 감동하였고 , 포실하게 사는 저 자신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기도해주신 교우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9 월의 첫날이고 첫 주일입니다 . 가을의 문턱으로 가는 9 월에도 우리 교우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우리는 지난 8 월 한 달 동안에 주일 미사에서 ‘ 생명의 빵 ’ 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 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에서 ,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떠났다는 소식을 지난주 복음에서 들었습니다 . 그리면서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 기억하실 것입니다 . “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같이 “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주님께서는 “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하고 고백하셨을 것입니다 . 이러한 우리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견하게 생각하실 것이고 우리 삶을 축복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   9 월부터는 요한복음을 떠나 다시 마르코 복음으로 돌아왔습니다 .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상의 선교 여행에 우리도 함께합니다 . 9 월 첫 선교 여행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만나십니다 . 또 그들은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골탕 먹일까 궁리하는 중에 아주 좋은 건수를 하나 만났습니다 .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 제자들의 행동을 보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는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만납니다 .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7 장을 인용하면서 , 몇 절은 생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 1 절부터 7 절까지는 소위 ‘ 세정법 ’ 이라 하여 , 원래는 제관들이 제사를 바치기 전에 손발을 씻는 법이 있었는데 , 율법

연중 제 21주일

  어느덧 8 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그럭저럭 여름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 당분간은 덥겠지만 선선한 가을바람을 상상하면서 지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지난 7 월 26 일부터 8 월 11 까지는 2024 년 프랑스 파리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 지구촌 모든 사람의 눈길을 한곳으로 모아서 국가를 대표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우리 교우분들도 많이 시청하셨을 것이고 열과 성을 다하여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대부분 서양 출신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오거나 시상대에 올라가면서 십자 성호를 긋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저 선수는 성호긋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올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   오늘 예수님을 몇 주 동안 이어지는 자기 계시 정식 , 영원한 생명의 빵 설교로 당신의 업적과 정체를 밝히시고 (22 절 -51 절 ), 살과 피 설교로 당신이 빵과 포도주의 상징 안에 현존하심을 강조하셨습니다 . 그런데 많은 제자가 영원한 생명의 빵 설교 및 살과 피 설교를 듣고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 “ 이 말씀은 듣기가 거북하다 .” 그들이 위의 두 가지 설교 내용 중 ,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게시자로 자처하신 말씀 (41. 51 절 ) 을 특히 문제시했기 때문에 , “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 하시며 반문하셨습니다 .   성서학적으로 , 요한복음의 ‘ 사람의 아들 ’ 사상이 나옵니다 .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시면서 ,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3,13; 6,62), 하느님과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다음 , 십자가에 달리시고 (3,14; 12,34), 하늘로 올라가시어 (3,13; 6,62) 영광스럽게 되셨으며 (12,23; 13,31),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분이시다 (5,29). 사람의 아들의 이러한 업적과 정체를 자연인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고 ,

연중 제 20주일 강론

  아침 , 저녁으로 이제는 좀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가을이 오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 그러나 한낮에는 여전히 덥습니다 . 한국의 여름 날씨는 이제 동남아시아 날씨와 같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 아열대 기후가 되고 있습니다 . 무덥고 비도 많이 오고 무엇보다도 습도가 너무 높아 불쾌 지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 날씨에 어떻게 적응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분명히 볼티모의 여름 날씨가 아주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   오늘 복음 역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라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 이 말씀을 두고 이제는 “ 유대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 라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 오늘 눈여겨볼 말씀은 제 1 독서와 2 독서에 나오는 “ 지혜롭게 살아라 ” 는 말씀입니다 . 1 독서의 마지막 말씀은 “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 예지의 길을 걸어라 .” 라는 말씀과 2 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 라고 말씀하십니다 .   오늘 독서 말씀을 종합해 보면 자연스럽게 복음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에 대한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유대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을 거부합니다 . 오직 전통에 매여 옛것을 고수하는 자세로 새로운 것에 대한 고민과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 “ 유대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 복음 말씀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   심리학자인 프로이드 (G. Freud) 는 “ 건강한 자아 ” 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건강한 자아는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실의 자신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 현실에 직시한다는 것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과거에 얽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서 나오는 것임

연중 제19주일 강론

  목요일 밤에는 강한 폭풍우가 지나갔습니다 . 볼티모에 와서 몇 번 겪었지만 목요일 밤의 폭풍우는 너무나 강력하였습니다 . 재난 문자까지 올 정도니 많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 우리 교우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을 ‘ 생명의 빵 ’ 이라는 말씀으로 자기 계시 정식을 지난주부터 말씀하고 계십니다 . 오늘 말씀도 지난주에 이어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 영원의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라고 지난주에 말씀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 말씀을 유대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단지 “ 썩어 없어질 양식 ” 만을 생각합니다 . 유대인들은 오 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이 가리키는 구원의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빵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길이 남아 있을 양식 , 곧 영생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대화에서 우리는 쉽게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빵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생명의 빵은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 유대인들의 생각은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1 차원적인 욕구 중심의 내용이라면 ,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고차원적인 욕구 , 본능을 뛰어넘어 생각하기를 바라는 내용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과 청중은 말을 서로 주고받지만 둘의 차원이 너무나도 다른 까닭에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요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은 본래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셨습니다 (1.1.18; 20.28). 이분이 사람이 되시어 (1,14) 하느님을 계시하고 자기 자신을 계시한산 다음 하느님께서 올라가셨다는 내용입니다 . 이 계시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 인간은 신앙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 이것이 요한복음의 핵심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구절절 어떻게든 유대인들이 당신 말씀을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