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2주일 강론

 지난주 부활 대축일 미사에는 많은 교우분이 참석하시어 뜻깊은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오신 교우들에게 분명히 많은 축복을 베푸셨다고 확신합니다. 주일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미사입니다. 그래서 주일 미사 참석은 부활 대축일 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부활 제2주일은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폴란드 출신의 마리아 파우스트 수녀님이 시성 되면서 2001년부터 하느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22번째 맞는 하느님 자비 주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성당에 가든지 우리는 성녀 파우스타 수녀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이 직접 명령하신 예수님의 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부활 제2주일의 복음 말씀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제자들에게 인사를 하십니다. 우리가 미사마다 서로 나누는 평화의 인사를 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Pax Vobiscum)”이라고 인사를 하십니다. 중동과 근동 지방 평화의 인사는 예수님 시대나 현대에나 변함없이 인사법이기도 합니다. 이 의미는 항상 전쟁과 분쟁이 많았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 인사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비시는 것이 아니고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 때 이별 선물로 평화를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14, 27). 여기 나오는 평화1427절 앞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두 분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면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에 젖어 완전한 몸과 마음의 상태가 바로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평화이기도 합니다.

 

평화또한 오늘 지내는 하느님의 자비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 사건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고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면 동시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비하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 말씀 앞부분에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라고 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몇몇 여자들이 만났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고, 신성 모독죄로 몰아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에서 과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이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어떠하였겠습니까? 불안, 두려움, 미래에 대한 막막함,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 초조함...! 누구도 제자들에게 위로, 용기와 믿음을 불어 넣어주지 못하는 상항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자비, 평화와가 전혀 없는 천지 창조 이전의 혼돈(Kaios)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상태를 예수님의 발현으로 완전히 몰아내고 그들에게는 혼돈에서 안정으로, 불안에서 기쁨으로, 두려움에서 안심로,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화된 상태를 체험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서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만납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스승은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나아가서 그들에게 죄사함의 능력까지 주십니다. 이제 제자들에게는 오직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스승의 모습을 전하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전하는 일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체험하고 살고 계십니까? 대부분의 교우분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체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반드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청하고 사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체험하고 청하는 조건은 무조건 하느님 앞에 용서와 나 역시 자비를 베푸는 겸손이 동반되는 사람에게만 오는 은총입니다. 성녀 파우스타 수녀님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받아주는 수녀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하느님 자비의 수녀회에 입회할 수 있었고, 평생을 수녀원 문간, 정원사, 요리사로 소임을 하면서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면서 겸손한 자세로 살았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을 받았고,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살아계심 예수님을 성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자비하심을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한가위 미사

연중 제7주일

연중 제31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