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강론

 지난주는 본당의 날이면서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교우분들이 오셔서 견진성사 받은 분들을 축하해 주셨으며 오랜만에 방문하신 Loi 대주교님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셨습니다. Lori 대주교님께서 가시면서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고 진심으로 환영해주신 교우들께 진심 어린 고마움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교회공동체의 이름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Lori 대주교님께서는 과거에 주일 미사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신 적이 한번 있었으나 견진성사를 집전하신 것은 처음이라 하시면서 아주 좋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어느 집 대문 앞에 간난 아기가 포대에 쌓여 놓여 있는 것을 지나가던 사람이 보았고, 아기를 살펴보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지나가던 사람은 경찰에 신고했고, 그 집 주인을 살인죄로 고발하였습니다. 재판 결과는 집주인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문 밖에는 주인의 땅이 아니라 국가 땅이기 때문에 그 주인은 아기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은 그 주인에게 야유, 비난과 저주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야유와 저주와 비난을 보낸 그 이유는 아마도 법률적으로는 무죄일지는 몰라도 윤리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아기가 자기 집 대문 밖에 있는지도 몰랐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위의 예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 비유는 상상적 비유(imaginative parable)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일반 비유와는 좀 다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부자는 라자로를 몰랐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집 앞을 나오거나 들어가면서 보았을 것입니다. 오늘 비유말씀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분명히 보았을 라자로의 모습을 무관심으로 일관한 부자를 나무라고 계십니다. 무관심의 결과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라자로는 천사들에 의해서 아브라함 품으로 갔고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복음은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그 부자는 저승(Hedes 혹은 Sheol, Netherworld)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그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다름 아닌 무관심한 삶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정법적으로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으로는 큰 잘못을 하였습니다. 저승에서 고통받고 있는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역시 지상의 삶에서 자비를 베풀어 본 적이 없음을 우리는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무관심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오늘 비유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자는 자신이 자비를 입는 것을 포기하고, 지상에서 사는 후손들에게 라자로를 보내어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부자의 후손들 역시 아버지를 본받아 무관심의 삶을 살고 있으며, 오랜 무관심한 삶의 결과로 그들의 마음은 이미 완고해졌습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후손들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후손의 완고한 마음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가야만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고 있습니다. 무관심(indifference)과 완고함(steeliness)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는 상상적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무관심과 완고함은 우리를 더욱 악한 사고와 행동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가끔 나의 마음 상태나 생각이나 행위들이 이렇게까지 악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가끔은 나 자신이 아주 대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양가감정(ambivalence)의 동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삶의 태도와 직결됩니다. 다른 말로 감정에 너무 치우치거나 의존할 때 이런 것이 생겨납니다. 무관심과 완고함의 삶은 부정적인 정서와 감정을 자극하게 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 역시 다른 사람에게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직간접으로 피해를 주게 됩니다. 오늘 비유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 마음 상태와 행위들을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무관심하고 완고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관심은 많지만, 그 관심이 내 중심의 관심으로 머물지는 않는지, 나 자신에게는 여유롭고 온유하면서 밖으로 타인에게는 완고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는 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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