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강론

 가을바람이 아주 시원합니다. 가을 햇살은 비타민 D가 많이 생성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을 햇살을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제가 한국의 추석이었습니다. 고향 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난 힌남노태풍으로 경주와 포항에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합니다. 태풍의 피해를 받은 분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추석도 잊어버리고 전국에서 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그들의 아픔에 함께 하였으면 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서 루카복음 15장을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우리가 잘 아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짧은 복음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세 가지 비유를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 주위로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였고, 그 모습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보고 있다고 전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왜 예수님 주위에 모였을까요? 복음서 여러 곳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호의가 아니라 항상 호된 비판과 꾸지람으로 일관되게 질책하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집단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자주 만나는 집단입니다. 계층으로 보면 앞의 집단은 절대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 유대인들과 공생할 수 없는 집단입니다. 어디를 가나 이 세리죄인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이나 존엄성과는 거리가 멀게 대우받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세리들이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은 이유는, 세리가 징수하던 세금은 부정기 간접세로서, 특히 국경을 넘어가는 물품에 대한 관세가 있고, 시장세. 통행세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세리는 징세권을 도급받아 있었고 그래서 세액을 높이 요구하여 돈을 자기 주머니로 가로챌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요 공공연한 죄인과 한가지였습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아주 고매한(high-minded) 사람들입니다. 소위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된 자들에서 나온 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도시에 사람들과 머물면서 백성들의 성화정결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도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교육시키고 강요까지 한 집단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자기들이 고매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 또한 바리사이들과 거의 같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바리사이들 중에서 율법학자들고 많이 있었습니다.

 

복음 처음의 구절에서 세리죄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일단 그 모습에 먼저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내용보다는 그 외적인 형태를 먼저 보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저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면서 자기들의 사고방식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하느님의 속성을 말씀하십니다. 고매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무섭고 심판하시고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아주 자비로운 분임을 강조합니다.

교우분들은 이 두 집단에서 어느 집단에 속하고 싶으십니까? 이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 집단은 자신을 아는 집단이고 다른 집단은 자신을 도무지 모르는 집단입니다. 자기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 갇혀 바깥세상을 보지도 않고 수용하지도 않으려는 집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바깥세상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때 인간은 성숙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리죄인과 같은 분류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가진 사람으로서 누구나가 하느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면 결국 하느님과 멀어집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한가위 미사

연중 제7주일

연중 제31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