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강론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도 그 관심을 느끼면 자신의 몸가짐이나 생각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고 행동 역시 올바르게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볼티모 뿐만 아니라 메리랜드 한국분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럴수록 우리 자신부터 시작하여 깊은 성찰과 변화로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같은 지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치의 시작은 작지만 같은 공동 지향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연중 19주일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생명의 빵(the bread of life)에 관한 담화 내용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예수님의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에 유대인들은 더욱 강하게 의아해하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유대인들이 제기하는 이의 내용의 첫 번째는 예수님 혈육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몇 주 전 마르코 복음에서와같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권위의 행사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가족사를 들추어내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너무나 담대하고 놀라운 말씀에 예수님 가족사를 언급합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대화에서 상통(相通, communication)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것을 넘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만 듣고 있는 유대인들은 지상의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 봅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지상의 것은 예수님의 가족사입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즉,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끝없는 평행선만 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유대인들의 뿌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메시아를 받아들일 것을 재차 강조하고 계십니다. 유대인이 하느님을 만날 유일한 기회는 당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음을 강도 높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유대인들은 더욱 반발합니다. 유대인들이 조상 대대로 배워온 지식과 상식과 통념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것이기에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메시아는 예수님과 같은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정치적 해방, 로마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유대인이 세상을 통치하는 메시아였습니다. 이러한 집단적인 사고에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방 하려 하시기에 예수님과 유대인의 갈등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보입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요?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의도(intention)를 찾아보면 그 실마리가 풀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하느님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시고자 합니다. 책에서 배운 하느님이 아닌, 조상들이 가르쳐주신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의 본연의 모습 즉, 분노에 더디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하느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 인간을 당신 모상(Image Dei) 대로 만드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을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다시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유대인들도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끝까지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간 예수, 옛날부터 함께 자라온 인간 예수 그래서 부모와 형제들을 잘 아는 그 인간 예수만을 인정하지, 공생활 이후 메시아로서의 신앙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갈등의 해결은 유대인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예수님을 신앙의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생명의 빵임을 재차 강조하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대인들에게서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삶의 순간순간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를 봅니다. 물론 우리가 인간 예수가 아니라 신앙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하지만, 재물과 예수님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재물로 마음이 기울여지는 성향을 가진 나 자신을 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겠다고 신앙의 그리스도께 다짐하고 약속도 하지만, 나의 기분과 감정이 먼저 앞서기에 용서보다는 판단을 먼저 하고 관심과 사랑보다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이라고 묵상해 봅니다.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 없이는 예수님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인 겸 동반자로 모시고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자아 성찰을 해야 합니다. 그 자아 성찰 중에 예수님이 우리 곁에 오십니다. 성찰 중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독서 말씀이 한 주간의 힘을 주십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증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 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한가위 미사

연중 제7주일

연중 제31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