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연중 16주일

 

 밀과 가라지를 직접 본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밀은 보았지만 가라지는 못 보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밀은 주식이기에 농부들은 매년 밀 농사를 지었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쌀 농사와 버금가는 중요한 농작물 입니다. 저의 집은 쌀농사를 지었습니다. 모내기를 하고 어느 정도 자라면 모와 함께 '피'라는 잡초가 생깁니다. 그래서 저의 할머니는 매일 논에 나가서 피 뽑는 것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논에 '피'라는 잡초가 많은 것을 보면서 논 주인의 게으름을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논에 '피'라는 잡초가 생기지만 논 주인이 부지런하면 피가 보이지 않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모와 비슷하게 '피'라는 잡초가 무성해 집니다. 

  오늘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냐는 질문에 원수가 와서 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들이 가라지를 밀과 구분하여 먼저 제거하려고 제안 하지만 그 주인은 그만두라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설명드리면, 그 가라지는 '독보리(darnel)'고도 합니다. 이 독보리는 밀밭에 자라는 잡초인데 밀과 함께 자라면서 그 뿌리가 밀뿌리와 합쳐져서 서로 엉퀴게 됩니다. 그러기에 쉽게 뽑히는 잡초가 아니면서 잘못하면 밀이 같이 뽑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에게 가만히 두라고 합니다. 같이 자라고 수확 때 밀과 독보리를 구분하여 거두어 들입니다. 이 독보리의 좋은 점도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이 독보리를 따로 보아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종들이 이 가라지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 말에 예수님은 원수가 자는 동안에 와서 뿌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원수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오늘의 비유말씀은 세상 안에는 선인과 악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은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 모두는 선인이 될수도 있고 어느 순간에 악인도 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인의 정의를 내리십니다. 바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사람과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하고 묵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강론을 쓰고 있는 저도 뜨끔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죄를 짓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은연중에 강요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대상이 남편 또는 부인, 가족들인 경우도 있고, 친구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정의가 아니고 불의 입니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못하고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한 인간을 성인도 되게 할 수 있고 살인자로 만들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조건은 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선인을 만들었지만 또 다시 나쁜 환경 안에서 살면 완전히 다른 살인자로 바꿀수 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불리움을 받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 안에 살면서도 우리의 나약함으로 가라지의 역할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매 순간 우리가 회개하여 다시 돌아올수 있는 문을 항상 열어놓고 계십니다. 식물은 밀가 가라지가 분명히 구별 되지만 우리 인간은 한번의 행동을 보고 선인이다 악인이다 단정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우리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산다면 절대로 남을 죄짓게 할수 없을 뿐더러 나 스스도 선인의 반열에 들수 있습니다. 그러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 십니다. 

 

 모든 교우분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밀과 가라지비유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영혼과 정신이 맑고 건전하고 육체가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모든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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