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 (사순 제3주일)
생수(生水)
사순 제3주일
2003년 미국 클리브랜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같은 반에 아홉명의 미국 신학생들이 있었는데 모두 제게 친절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동기 두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점점 마음에 안드는 동기 한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두명은 뭘 해도 착하고 좋아보이는데 한명은 하는 말이나 행동이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늘 하던대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마음은 제멋대로 새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은~근히 바라는대로 기대하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찾고 그들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혔던 것입니다. 그 뜻은 동시에, 마음이 열심히 찾고 있는 원하지 않는 사람, 미워할만한 사람에게 다른 딱지를 붙이고 실제로 무시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익숙한대로 생각하고 습관대로 행동합니다. 상황이 그러니 마음 가는대로, 아니면 느낌에 따라 아무 성찰없이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이 있고, 누군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움이 있으면 괴로워합니다. 마음은 제멋대로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딱지를 붙히면서 머리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고 실제로는 반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길을 걷느라 지쳐 사마리아에서 우물가에 앉아 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자 예수님은 물을 청합니다. 분명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인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이 율법과 관습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물이 필요한 목마른 사람으로 여자 앞에 내놓습니다. 여자의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대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갑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여자에게 남편 이야기를 꺼내며 여자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 예수님은 진실한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려야 함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여자에게도 하느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시며 바로 당신께서 메시아이심을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보통 유대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방인 여자에 대한 느낌이나 관습으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아무 성찰없이 마음가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대신 연민과 사랑으로 상대방을 천천히 진리로 이끄십니다. 누군가의 조건이나 상황, 내 마음이 익숙한 어떤 환상이나 망상도 없이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다가서고 대화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목마른 한 사람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이방인 여자와 대화하고 계신 예수님을 보고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먹고 사는데 빠져 정신없는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생각, 자기 마음의 느낌, 습관에 갇혀 있는 우리 역시 제자들과 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행복한 사람은 누구나 '나는 이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은 나의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은 나의 일이 아니며, 나의 생각과 느낌, 습관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은 나의 뜻, 나의 느낌과 습관을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내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나아가고, 모순투성이인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보속으로 하느님의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다듬지 않은, 성찰하지 않는 마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목이 마르다고 합니다. 미움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 때문에 고통스럽고, 모든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목이 마릅니다. 그런데 목마른 그들은 생수를 찾고 마시지 않습니다. 대신 늘 그랬듯이 마음이 좋아하는 콜라, 커피, 술을 마시면서 계속 목마르다고 할 뿐입니다. 익숙한 것, 성찰하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괴롭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에게 딱지를 붙히거나 지레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시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생수이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마시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씨 뿌리는 이가 누릴
수확의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와 영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삶에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성찰하고 자신을 향한 하느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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