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는 친절 (연중 제5주일)

 

나의 종교는 친절

(연중 제5주일)

첫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번째 화살은 맞지말라.”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첫번째 화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일입니다. 갑자기 병에 걸린다거나 누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운다든가 말과 행동에서 실수하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화살은 이런 안 좋은 일 때문에 스스로 자책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난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 두번째 화살인데 그건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자신마저 스스로를 힘들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종교는 단순합니다. 나의 종교는 친절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입니다. 우리 친절의 첫번째 대상은 자신입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만 머물면 자기연민에 빠지기 쉽고 진정한 구원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탈무드에는 메시아가 어디에 있는지?’하고 예언자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언자는 메시아가 지금 성문에 앉아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누가 메시아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자 예언자는 대답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상처를 입고 앉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상처를 덮고 있는 붕대를 일제히 풀고 나서 다시 맨다. 그러나 메시아는 한번에 하나씩 붕대를 풀고 다시 감는다. 그 이유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 잠시라도 지체하지 않고 돕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싸기에 바쁘지만 메시아는 자신의 상처를 돌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도 어루만지고자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처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에 매달려 자신만 불쌍히 여기고 남에게 늘 동정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남의 상처를 감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의 상처를 돌볼 때 내 상처가 낫게 된다는 점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선포합니다. “(참된 단식이란)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이사 58,7-8).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좋은 소금인지, 나쁜 소금인지 관계없이 내가 강한 빛인지, 흔들리는 빛인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과 빛은 오로지 자신을 녹이고 태우는 것이 사명이지 자신을 위한 소금, 빛을 위한 빛이 되지 않습니다.

소금과 빛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역시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때 자신의 정체성, 곧 누군가에게 유용한 소금과 어둠 속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상처만 바라보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대신 타인의 상처를 돌보고 나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친절할 때 우리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가시고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의 상처로 우리가 나았다” (이사 53,4-5).

예수님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아픔만, 내 고통만, 내 상처만 보일 때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를 위해 상처받고 고통받고 죽음까지 받아들이신 예수님 사랑에 의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나의 상처는 여전하겠지만 남을 도울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상처도 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길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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