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연중 제 2주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연중 제2주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미사 때마다 영성체 때 사제가 예수님의 몸을 들어올리며 외치는 말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서 왔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하느님의 어린양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보라'하고 세례자 요한은 외치는데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 대신 다른 것을 보고 세상의 죄에 빠집니다. 한마디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죄에 빠트리려고 유혹하는 악마의 술책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명한 가톨릭 작가 C.S.Louis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악마의 본질과 계략에 대해 살펴봅시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에 빠트리는 가장 큰 원칙은 인간을 큰 죄로 무너뜨리기보다 하느님 없이도 괜찮은 삶으로 ‘서서히’ 길들입니다.

 

악마는 신자에게 '하느님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신앙을 삶과 분리시켜 하느님을 중요하지 않은 분으로 만듭니다. 악마는 극단적인 악보다 사소한 이기심, 미루는 기도, 반복되는 무관심을 통해서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냅니다. 이때 이성이나 논리를 사용하지 않고 '실용적인', '현실적인', '합리적인' 같은 모호한 말로 이유를 만들고, 상처와 불안, 옆 사람의 꼴불견 같은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의를 분산시킵니다.

 

악마는 인간이 '현재'에 머물며 하느님과 교제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헛된 희망을 품게 하여 현재 주어진 책임과 사랑에 소홀하게 만듭니다. 아니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거나 '옛날이 좋았지'라는 향수에 젖게 하여 현재의 삶을 불평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나중에'는 가장 흔한 유혹입니다. 지금은 아니니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혹은 언젠가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을 심어 주어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을 감정 중심으로 만드는 것도 악마의 유혹입니다. 느껴질 때만 기도가 의미있고 영적 메마름을 실패로 오해하게 만들어 '너의 신앙은 가짜였다'라고 속삭이거나 '하느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악마는 교회 밖보다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일합니다. 악마는 하느님께 다가가려고 애쓰는 사람을 유혹하여 죄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나에게 상처나 실망을 준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상처와 실망은 피할 수 없는데 이때 악마는 당사자로 하여금 그것을 붙들고 판단, 비교, 불평, 분열을 일으켜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고 서로 미워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약점만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 유혹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우리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하느님의 어린양은 죄 많은 나만이 아니라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기꺼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대가 없이 남을 위하는 마음은 악마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악마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흠집을 내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큰 시련은 인간을 하느님께 매달리게 하므로 악마는 미지근한 안락함, 혹은 내 힘으로 견딜만한 어려움 속에 인간을 가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악마는 말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은 급경사도 아니고, 이정표도 없으며 갈림길도 없는 완만한 평탄길이다."

 

그렇다면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온갖 유혹에서도 하느님을 선택하는 마음, 겸손한 기도, 작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악마는 더러운 영이기에 인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대신 두려움, 불안, 미움을 불러 일으켜 스스로 악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일은 반성하고 잘한 일은 감사하고 내일은 좀 더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그분께서는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이사 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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