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말하기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부터 말하기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키워나가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인가! 하고 자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요셉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가정은 헤로데라는 왕이 가진 예수에 대한 적대감으로 아기의 생명이 위험해지자 고국을 떠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쫓아오는 헤로데의 군사들을 피해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몇 달을 도망쳤습니다. 갓난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에서 보낸 4년 가까운 난민 생활 역시 쉽지 않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7년 성탄 성야 강론 때에 말씀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발자국에는 너무나 많은 다른 발자국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시대에 떠나도록 강요당하는 모든 가정들의 자취들을 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 나와 갈 곳을 정하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자취를 봅니다. 많은 경우에 이 출발은 희망,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다른 이들에게 이 출발은 그저 한가지 이름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살아남기. 오늘날의 헤로데들에게서 살아 남기."
현대의 많은 가족들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씁니다. 미국의 높은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의 몫은 고스란히 가정의 경제적인 부담이 되어 생계를 어렵게 만듭니다. ICE의 무차별 이민자 단속, 영주권 뿐만 아니라 시민권 박탈에 대한 위협은 사회적 불안을 조장합니다. 폭발적인 물질주의와 AI로 인한 실업,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정서적 안정감을 한계치까지 몰아부칩니다.
오늘날 가족은 저마다 힘든 개인이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가 힘든 줄을 알면서도 나도 힘들기 때문에 다정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화, 무관심, 대화와 심리적 단절이 지배합니다. '가족끼리는 그러는게 아니다.'라는 말이 농담 같지만 현실을 보면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지 못하는 가족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성가정을 거룩한 가정, 결점없는 완벽한 가정으로 여기지만 현실에서 그런 가정은 없습니다. 성가정이란 완벽한 가정이 아니라 제각각의 사정으로 힘들고 상처입은 가족 구성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거룩해지기를 갈망하고 노력하는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제서야 자신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가장이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기보다 늘 화내고 잔소리해서 미안한 부인과 함께 천방지축 제멋대로인 자녀들을 데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족이 되려고 애쓰는 가정입니다.
은근~히 바라는 마음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거기서 원망이 쌓여 있다면 잠깐 제쳐두고 먼저 '요즘 힘들지?'하고 물어본다면 어떨까요? 성탄이니까 '메리 크리스마스'하면서 작은 선물을 주거나 새해에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격려해주면 어떨까요?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콜로 3,13-15).
'나처럼 너도 힘들구나.'를 생각하고 다른 이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면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한 사람이 되어 성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던 예수, 마리아, 요셉이 그들 가정에 함께 머물게 될 것입니다.
2025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묵은 잘못과 후회를 정리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십시오. 가까운 가족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아기 예수님을 주시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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