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ing (그리스도왕 대축일)
No
Kings
그리스도왕 대축일
지난 10월 18일 볼티모어 마라톤 대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번호에 무언가를 달고 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No Kings'였고, 그것은 그날 미국 전역에서 7백만명 이상이 참여한 평화시위로 미국에는 왕이 필요없으며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운동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포퓰리즘이나 독재를 통한 권력으로, 막강한 자본과 기술로, 혹은 특별한 재능이나 인기로 사람들 위에 서서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빈정거리는 지도자들, 조롱하는 군사들, 그리고 모독하는 죄인입니다.
왕이 되려는 자와 왕을 반대하는 자 모두 어떤 왕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되려고 하는 왕과 그들이 반대하는 왕은 도대체 어떤 왕입니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왕에는 네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수준이 낮은 왕은 사람들이 경멸하는 왕입니다. 어떻게 왕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게 만듭니다. 그보다 나은 왕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왕입니다. 왕에게는 권력과 힘이 있기에 사람들을 그를 두려워합니다. 그보다 나은 왕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칭송하는 왕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모범이 되고 백성을 위해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왕이 있는데 그는 백성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왕입니다. 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왕을 모르는 이유는 세상의 왕들이 경멸받거나 두려워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사랑하고 칭송할만한 왕이 있긴 하지만 있는지도 모르는 왕은 없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5-28).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왕이 진정한 왕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왕이 아니라 종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4-5).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처럼 빈정거리고, 조롱하고, 모독하며 자신만의 왕을 섬겨야 할까요, 아니면 진정한 왕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할까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교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기쁨도 있었겠지만 시련과 고통, 죄스러운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왕 앞에서 우리는 죄책감보다는 감사,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땅 끝에 있는 마라도에는 아름다운 마라도 성당이 있는데 그곳을 지은 민성기 요셉 신부님(1958-2004)의 글이 같이 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은 돌아서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입니다. 마라도는 우리 땅 끝이 아니라 우리 땅의 시작입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그렇게 마라도는 시작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라도에 서면 희망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한해의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어떤 것이든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것은 마치 연극의 끝장면처럼, 비극과 희극, 오르막과 내리막, 온갖 죄와 용서가 있은 뒤 찾아오는 정화와 감동입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고 눈물을 흘리며 웃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Catharsis)입니다.
그 한가운데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희망입니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