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위령의 날)

 

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위령의 날

 

죽음을 생각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처럼 우리도 가야할 길을 생각하며 삶을 다시 살펴보는 주일입니다.

 

죽음 없이 삶이 없습니다.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면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아주 관대한 삶의 길이를 가정하며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의 길이를 통제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 기대하지 않았을 때 죽음은 갑자기 닥쳐올 것입니다.

 

깨어있는 자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에 관심을 가집니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삶의 깊이에 전념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간은 무한정해 보이고 그 시간에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해방을 만끽하는데 문제가 있을리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전에 후배 신부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젠 무얼 해도 재미가 없어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에게 삶이란 재미를 추구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삶의 깊이는 전념에서 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해내는 것입니다. 익숙해지겠지만 지루해 하지 않고 헌신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제가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새로운 것, 흥미로운 것은 그 자체로 쾌락을 가져오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삶의 깊이에 전념하는 삶은 하나를 선택하는데서 오는 다른 하나에 대한 포기,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열정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에서 삶의 깊이를 추구하고 그것은 재미보다 깊은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재미만 추구하다보면 아무리 긴 삶이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가 짧아도 의미있는 삶이 있습니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고애신은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저 역시 죽음이 두렵습니다만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I fear death. But I made up my mind)."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헌신, 그보다 더 의미있는 삶은 없기에 그 말은 오랫동안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하는 마지막 단계가 있습니다. ‘재미를 넘어서 의미를 추구하는 비범한 사람보다 더 깊이 있는 삶은 '묘미'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자신을 넘어선 삶의 묘미는 신이 허락하는 은총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위로받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자비를 입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것이 신앙의 묘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 온갖 사악한 말을 견디는 것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 되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이라는 묘미입니다.

 

우리 역시 죽음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재미만 추구하며 최대한 멀리 도망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없이 길 것 같은 삶은 언젠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그때 두려워하며 후회하는 삶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히려 의미있는 삶, 헌신하는 삶을 위해 용기를 냅시다예수님을 바라보며 심지어 죽음이라는 것마저 두려움없이 받아들이려 노력하다보면, 그때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삶과 죽음의 묘미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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