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의 길 (연중 제 30 주일)
의로움의 길
연중 제30주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아주 열심한 신앙인입니다. 강도짓이나 불의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쉽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해 내고 있으니 박수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떠합니까? 같은 동족의 세금을 뜯어내어 압제자 로마에 바치고 그 이득으로 배를 불리는 매국노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 동포에 대한 배신이기에 그는 혐오의 대상이 되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으나 먹고 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바리사이나 세리 모두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같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갑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자말로 기도합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둘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여러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스스로를 의로운 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죄인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느님 앞에서 떳떳합니까, 부끄럽습니까?
'내가 적어도 저 사람보다는 낫지. 그는 미사도 종종 빠지고, 봉사활동도 잘 안하는데.'
'그건 기본이지. 따로 신심단체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교무금도 제때 안내던데 그런 그와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은 잘 살피지 않으면 자라나 자만심이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에까지 이릅니다. 상대가 못한만큼 내가 더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기자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물었습니다. 교황님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눈여겨 보시는 죄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진실하게 바라보며 겸손하게 맡기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 언급되는 의로움을 보면, 하느님 앞에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는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혼잣말을 늘어놓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고개를 숙이고 자비를 간청합니다.
의로움은 다른 사람,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것입니다만 우리 가운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남을 하찮게 여기거나, 나는 괜찮은데 그 사람이 문제라고 여긴다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가깝습니다.
1독서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는 가장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보다 낫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들의 하소연을 먼저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세울 것이 없어 주님께 겸손하게 간청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 규칙을 잘 지키는 것, 공로를 쌓는 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필요합니다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자신을 가르켜 '바보야'라고 말했던 85세의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면 우리는 아직도 바보가 되기에는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인기나 명예, 안락이나 권력을 주는 길과는 다릅니다. 남들이 알아주고 나도 편하고 나름의 성취감도 있기를 바란다면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맡기며 은총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길이 때론 힘들게 느껴져도 세상이 줄 수 없는 보람과 평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평생을 바라보며 추구한 길이 우리의 길이 되며, 우리 모두 '의로움의 화관'을 위해 지치지 않고 달려가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말이 다음과 같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