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의 흙 (연중 제28주일)
나아만의 흙
(연중 제28주일)
아프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자기관리를 잘해도 아픈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종종 죄책감을 느끼고 가족과 이웃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렇습니다. 나병이라는 저주에 걸려 벌로 공동체에서 쫓겨난 그들은 예수님이 가는 길에서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2-13).
환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병의 치유입니다. 나병환자들이 바랬던 것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병을 치유해 주십시다.
우리도 모두 병에서 회복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게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 모두 치유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만 낫고 자기 관리만 잘하면 될까요? 아프지 않는 것이 여러분의 목표인가요?
건강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이 낫자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몸은 다시 아플 수 있지만 사마리아인의 찬양과 감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병은 다시 들 수 있지만 구원에 대한 믿음은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이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가 아프건 아프지 않건 우리를 살게 하는 복음입니다.
1 독서에 나오는 시리아 사람 나아만을 봅시다. 그는 엘리사 예언자의 말대로 요르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그고 나병의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감사의 뜻으로 엘리사에게 선물을 드리고자 했으나 받지 않으니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간청합니다.
그냥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나아만은 왜 굳이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려했을까요? 그는 복음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고백한 믿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 표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2열왕 5,15).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구원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삶이란 늘 시급한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쁘다 바쁘다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눈앞에 닥친 시급한 일들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밤에 누워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오늘 나를 바쁘게 했던 것들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을까, 나는 중요하지 않은 시급한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닌가?
삶에 시급한 일은 늘 넘쳐납니다. 우리의 하루, 우리의 기도가 모두 시급한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시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을 풍요롭게 의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건강의 회복이라는 시급한 일을 해결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찬양과 감사, 믿음과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다시 아프게 되고 같은 절망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시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운동을 시작하는 것, 피아노를 배워보는 것, 10년 뒤에 내 모습을 상상하며 준비하는 일 등이 그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가장 확실한 것은 나아만이 하느님을 만나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갔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는 가장 확실한 것을 들어봅시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성실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 2,11-13).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 수 없듯이 예수님은 당신을 모른다고 하고 불성실하기까지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성실하시고 큰 사랑이시기에 그분 앞에서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만 이보다 더 확실하고 중요하며,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낼 복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