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희망의 순례자 (연중 제27주일)
성실한 희망의 순례자
연중 제27주일
김건호 그레고리오 신부
볼리비아에서 7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행복하고 기쁜 날들도 있었지만 힘들고 괴로운 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 공소 구역에 살던, 세 딸을 둔 한 가족이었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거칠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고, 감옥을 드나들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서는 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부부의 다툼이 격해져 남편은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을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곧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40년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세 명의 어린 딸들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복사단이기도 했던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불의한 일들을 겪으며 저는 하느님께 물었습니다.“주님, 왜 이런 일이 이 아이들에게 일어나야 합니까?” “정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불의와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1독서의 하바쿡 예언자도 똑같은 부르짖음을 드립니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 싸움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제 가정의 어려움 속에서, 제 삶의 고통 속에서 저는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는데 왜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
그런 우리의 탄식에, 예언자의 절박함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적어라. 정해진 때가 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충실함으로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것이다.”
기도는 바로 충실함과 성실함의 행위입니다. 즉각적인 응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며 묵묵히 하느님 앞에 머무는 것, 그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희망입니다. 정의로운 하느님께서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실 것이라는 희망,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고, 신앙 안에 머물게 합니다.
한 기자가 김연아 선수에게 “무슨 생각을 하시면서 연습을 하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그냥 합니다.” 넘어져도, 다쳐도, 계속해서 점프하는 이유는 ‘대회 당일 완벽하게 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기쁨,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그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응답이 없어도,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희망으로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렇기에 올해 ‘희망의 순례자’라는 주제로 희년을 지내는 것은 참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는 힘없이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그곳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기에 희망하며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결코 나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불의와 고통의 순간들을 그저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간직하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간청합니다.“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 구절 바로 앞에서는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뉘우치면 용서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용서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리고 우리도 겸손히 청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사야서 30장 20-21절의 말씀으로 오늘 강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을 때가 있고 때로는 나태해질
때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뒤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분께서 함께하시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해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조차도,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의 힘으로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성실함과 희망으로 우리 모두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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