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연중 제 21주일)

 

가지 않은

(연중 21주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우리나라에서 가장 좁은 가운데 하나는 의대 입학입니다. 몇년전부터 생긴 입시에서의 기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서울대 공대나 상대, 의대를 포함한 연고대의 가장 우수한 과들이 수시전형이 끝나면 정원 미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대학 서열 순서대로 의대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의대 입학의 좁은 문은 경쟁률이 높고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 관문이지만 동시에 가장 넓은 문입니다. 왜냐하면 1 제일주의와 의대 지상주의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기를 원하고, 이유는 당연히 안정된 직업, 사회적 지위, 경제적 보상 때문입니다.

저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약대 지도신부로 3년간 있었습니다. 의대를 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상위권에 속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우리대학 약대에 입학만하면 거의 100% 약사가 되는 이들에게 자주 물었습니다. '어떤 약사가 되고 싶니?' ' 약사가 되려고 하느냐?'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가지고 싶은 것은 아는 똑똑한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나중에 직업에 따른 경제적 보상에 만족할 터이지만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고 시련이 닥치면 그렇게 애써 바랬던 일을 쉽게 떠나기도 것입니다.

좁은 문은 이와는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Why)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How)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있다면 무엇(What)으로 사는가는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 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 세상 사람들처럼 가치없이 목적없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 하느님 안에서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때론 부담스러운 신앙인의 길을 걷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시련을 훈육으로 견뎌내며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시기"(히브 12,6) 때문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The road not taken)' 노래합니다.

노란 속에 길이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길에는 풀이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걸어야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우리는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위로 자꾸 올라만 가려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기꺼이 낮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 우리의 주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 앉고 꼴찌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사람, 주인이 아니라 ,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려 하고, 심지어 원수도 사랑하려 애쓰는 사람은 과연 좁은 문으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언젠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하느님 잔칫상에서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루카 13,30)"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좁은 문으로 걸어가면 '가지 않은 ' 마지막 구절이 나의 시가 됩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속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자비의 선교사 (하느님의 자비 주일)

지금 어디쯤 있나요? (사순 제 4주일)

십자성호 (삼위일체 대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