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종 (연중 제 19주일)
아름다운 종
연중 제19주일
여러분은 언제 어른이 되었습니까? 대학들어가서, 군대가서, 결혼해서, 부모가 되어서 등 다양할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 후에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려서 제가 살고 싶었던 삶이란 대충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결국 자기 중심적이고 한없이 이상적이고 그래서 비현실적인 삶을 꿈꾸는대로 이루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을 내 뜻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삶이란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님을, 곧 제가 삶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저에게 묻는 질문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이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삶을 이해하고 바꿀 능력이 없고, 삶이 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즉 제가 아니라 삶이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어른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쩔 수 없는 시간, 고통, 죽음은 삶이 제게 던지는 숙제입니다. 밖에서 즐겁게 뛰놀며 대장질을 하던 아이도 집에 돌아와 못다한 숙제를 보고는 풀이 죽습니다. 다 아는체 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제가 제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기꺼이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
종은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할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해낼 수 있으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준비하고 깨어있는 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의 안락이나 돈이 아니라 충성(忠誠)하는 자세입니다. 작은 일에도 성실한 종은 마음(心)의 한 가운데(中)에 주인이 있기에 중(中)과 심(心)을 합한 충성할 충(忠)을 지킵니다. 그리고 주인의 말(言)을 성취하는 것(成)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에 언(言)과 성(成)을 합한 참될 성(誠)을 실천합니다.
삶이란 한마디로 '주인에게 충성(忠誠)하는 것'입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루카 17,10).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복종>은 노래합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종에게 주인은 보통 두려운 존재이겠지만 주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종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종이라도 다 같은 종일 수 없습니다. 주인을 잘 알고 더 사랑하는 종은 더 충실하고, 주인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길 것입니다. 능력으로 재력으로 체력으로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시는 것"(루카 12,48)은 당연한 삶의 조건입니다.
하지만 늘 깨어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종의 삶은 늘 긴장이기에 고달픕니다. 영원히 종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삶이란 지나가는 것이며 팔할 이상이 견디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삶을 견디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절실합니다. 사랑이 간절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 이후에는 우리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주인의 아들 딸, 곧 상속자로 불리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에게 주인은 그들 곁에서 시중을 들 것입니다(루카 12,37).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늘 본향(Heavenly Homeland)을 갈망하고 있습니다'(히브 11,16).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더 이상 어른일 필요없이 그저 사랑받는 아들 딸이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 모친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아가시기 전 제게 말하셨습니다.
"얼마전에 꿈을 꾸었는데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에 있었단다. 거기에 성모님이 계시고,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계셨단다. 천국이 그런 곳이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하느님께 충실했던 어머니의 삶이 그렇게 소담스럽게 하늘 본향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아름다운 종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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