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리빙스턴 (연중 제 18주일)
조나단 리빙스턴
(연중 제18주일)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안락한 삶을 누렸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궁 밖으로 나갔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잘것 없는 음식을 서로의 입에 넣어 주며 즐겁게 노래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저들은 저토록 행복한가?" 왕이 물었습니다. "저들은 아직 99클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왕에게 신하는 금화 동전 99개를 청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신하는 금화 99개가 든 자루를 농부의 집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자루를 발견한 농부는 금화를 보고 놀라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세어도 금화는 99개였습니다. 농부는 결심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빠른 시일 내에 금화 1개를 채우기로 말입니다.
그날부터 농부는 두배로 일하며 가족들을 다그쳤습니다. 서로를 돌보거나 노래할 여유도 없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회의가 들어 아버지 몰래 금화 3개를 가지고 도시로 가 흥청망청 써 버렸습니다. 이 사실은 안 농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아들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금화 4개를 채우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왕은 어느날 왕궁을 나와 그 가족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챙기지 않고 화만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저들에게 있었는가?" 왕이 묻자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이제 저들은 공식적으로 99클럽에 가입했습니다. 99클럽은 충분히 가졌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금화 1개를 더 채우려는 탐욕에 빠져 지금 이 순간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콜로 3,5). 오늘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을 가르켜 '옛 인간(콜로 3,9)'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 거짓말에 갇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 그의 마음은 쉴 줄 모르는(코헬 2,23)'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부와 명예, 현세적인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할까요? 왜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지(콜로 3,9-10)' 못하는 것일까요?
어느날 농부가 새끼 독수리를 주워다가 닭장에 넣었습니다. 독수리는 병아리처럼 열심히 모이를 쪼아먹고 어미 닭을 따라 다녔습니다. 어느날 마당에 있던 어미 닭과 병아리들이 놀라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서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는 멋진 새가 보였습니다. 얼핏 자신과 닮은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닭장으로 도망쳤습니다.
고개를 땅에 처박고 열심히 모이를 쪼는 독수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살며 땅에 있는 것들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때가 오면 '모든 것이 허무로다...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남는 것이 무엇인가?(코헬 2,22)'하고 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닭입니까, 독수리입니까? 여러분은 땅만 보고 삽니까, 아니면 하늘을 쳐다봅니까? 여러분은 옛 인간입니까, 새 인간입니까?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10).
새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콜로 3,1)'하는 사람입니다.
참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바오로 사도는 계속 말합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
한마디로 참지식에 이르면 구분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옛 것과 새 것, 나와 너, 옳고 그름의 구분없는 자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때는 옛 인간도 새 인간도 구분할 필요없이 오직 그리스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어릴 적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생각납니다. 다른 갈매기들과는 다른 조나단 리빙스턴은 남들이 뭐라하건 자기가 원하는 것,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그 흔한 비행을 끊임없이 연습해 남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고개를 땅에 처박고 모이를 먹는데 급급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독수리처럼,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구분과 차별을 넘어선 자유이며 참지식입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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