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맞는 비 (연중 제 15주일)
함께 맞는 비
(연중제15주일)
<굴뚝 청소한 두 아이 이야기>
오늘 예수님께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묻는 율법 교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가운데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항상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내 말을 들어라'하고 말하는 사람은 율법 학자처럼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그럴듯한 질문을 합니다.
예전에 대구대교구 사제 연수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에 포섭되어 활동하다가 극적으로 탈퇴한 젊은이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방식으로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목표로 한 사람을 세뇌시켜 이단에 빠지게 하고 가족마저 버리고 거짓 신념으로 교주를 맹신하게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발표자가 이야기를 마치고 청중인 사제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는데 어떤 사제가 '신천지를 탈퇴한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립지 않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반인륜 집단인 이단 신천지에서 벗어나 그 고통에 대해 특강을 한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질문이었습니다. 대답을 주저하는 발표자에게 그 사제는 '이상한 집단이지만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느끼고 빠져들지 않았나요? 종종 지금도 그때가 그립지 않나요?‘
마치 죄인을 추궁하듯이 질문을 쏟아내는 사제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발표자, 마침내 '그랬던 것 같다.'며 인정한 발표자에게 '그럴 줄 알았습니다.'하고 혼자 말을 하며 마이크를 내려놓는 사제에게 저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상식마저 저버린 그의 집요함과 잔인함에 치를 떨었고 동료로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제는 자기가 옳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한 사람의 상처난 마음을 후벼파고 그 폐허 위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충조평판, 즉 충고 조언 평가 판단에 능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율법 학자는 실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남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율법을 머리로만 알지 가슴으로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처럼 율법에 갇혀 타인을 위해 그것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말은 그만하고, 가서 너도 이웃이 되어 주어라.‘
나를 넘어서 타인에게로 향하는 것, 이것이 이웃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배우자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가만 내 이야기부터 들어봐!'하고 강요하거나 상대의 잘못을 친절하게 일일이 지적하기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때로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이 되어주는 것의 가장 높은 단계는 신영복 선생의 다음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도와준다는 것을 항상 무언가를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말없이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이웃은 없을 것입니다.
'말은 그만하고, 가서 너도 이웃이 되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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