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정신을 지배한다 (연중 제14주일)
공간은 정신을 지배한다
(연중 제14주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11).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인가요? 죽은 뒤 가는 천국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나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곳입니다. 죄와 악으로부터 해방되고, 아픈 이가 치유되고 가난한 이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곳, 한마디로 하느님 계신 곳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용서, 치유, 정의, 사랑의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죽음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온 하느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가 우리 한가운데에 있다'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신앙을 가진 우리 마음에, 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이며, 우리가 준비하는 새성전 역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공간은 정신을 지배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단순히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우리의 사고와 감정, 정체성을 형성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새성전은 새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공간에 맞는 새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과거의 상처, 반목, 두려움, 어둠이 지배적이라면 용서, 신뢰, 희망, 빛이 들어올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이사 66,12). 우리가 꿈꾸고 준비하는 새성전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강물같은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겪었던 숱한 고통과 슬픔, 두려움과 불안에서 위로와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6,15).
할례란 유대인을 구분하는 표식이지만 동시에 비유대인을 차별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도 쓰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리 본당에 등록되었는가 아닌가, 우리편인가 아닌가, 과거에 떠났는가 아닌가를 구분하기 시작한다면 중요하지 않은 할례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 창조'입니다. 한마디로 새공간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랜 관행, 묵은 감정, 이기적 사고, 배타적 인식에만 머문다면 새성전에 몸만 오고 마음은 과거의 성전에 머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갈라 6,16).
주님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한 신앙인이 되고자 애쓰는 우리에게 평화와 자비를 주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참으로 많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성전을 짓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 성령으로 일치하는 공동체가 되려면 일꾼이 참으로 많이 필요합니다. 수확할 곡식이 지천에 있는데 손이 없어 수확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강물같은 평화에 발을 담구면 좋겠습니다.
신앙이란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지금 이 자리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기꺼이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날 것입니다"(이사 66,14).
새성전과 새공동체 건설의 중요한 때에 한 몫을 차지한 것을 기뻐하며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합시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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