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합니까? ( 연중 제 6주일 )

                                                                        행복합니까?

                                          ( 연중제6주일 )

 

인생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살아간다는 것, 삶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합니다.

"우리 인생은 고통과 지루함을 오가는 움직임 사이에 있다. 빈곤과 결핍은 고통을 낳고, 안전과 과잉은 지루함을 낳는다. 고통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하층 계급이 있으면 지루함을 상대로 필사의 싸움을 벌이는 또 다른 계급이 있다."

 

지금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가난하거나 아파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별 일 없는 일상에서 넘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선택이 어려운 지루함의 상태에 있습니다.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마라'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이유도 고통보다는 지루함에 가까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일을 만들고 사람을 의도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결국 혼자고, 극심한 고통 중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지루해서 심심해서 안해도 되는 일,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행복은 모든 인간에게 지상최대의 목표요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행복을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30년 넘게 연구한 연세대 서인국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다른 말로 하면, 행복은 인간 생존의 수단이라는 말입니다.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행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의 변화는 인간을 오랜 진화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분석할 때 더욱 뚜렷해집니다. 인간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 같이 사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그 결과 더 많은 쾌감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개념이 성공입니다.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 믿지만 실상 삶은 큰 변화가 없어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열심히 살까요?

 

1920년생으로 지금도 살아있는 김형석 철학 교수(현재 104)'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물질주의자입니다. 소유에 목숨을 거는 물질주의자는 더 많은 소유를 늘 갈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소유는 비교를 부추기고 또 다른 소유를 추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은 만족에서 오는데 물질주의자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이기주의자는 남과 주고 받지 않으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인간중심의 물질주의자와 이기주의자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한마디로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입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자면, 쾌활한 사람입니다.

 

고통과 지루함 사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쾌활한 사람은 고상한 성격과 낙천적 기질,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쾌활하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쾌활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마음의 건강은 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자주 몸의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화답송인 시편 1편은 150편 모든 시편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은 결국 선택입니다. 악인의 길과 선인의 길, 자신만을 믿는 오만한 자와 주님을 신뢰하는 자, 바람의 흩날리는 검불과 시냇가의 심어진 나무 사이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입니까? 그동안 중요하다고 선택해 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중요한 것들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인국 교수는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 명예, 성공 등-은 일정 부분이 채워지면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유전적인 특성도 있지만 행복은 경제적인 부가 아닌 사회적인 부, 즉 특별한 인간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나만의 소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신경쓰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남이 뭐라하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용기내서 해야 합니다.

 

행복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인류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간의 뇌를 가장 흥분되고 즐겁게 만드는 생존의 필수조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한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느님 안에 하나된 형제 자매가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시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이보다 더 좋은 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체성사는 행복의 원천입니다. 쾌활한 마음으로 자기답게 하느님 앞으로 나와 함께 먹고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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